RAIN SOUNDS 8 HOURS OF REAL RAIN VIDEO & AUDIO



2015년 9월 13일, 어느덧 또 가을이 성큼 곁에 다가왔다.

낮에 구름한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노랗게 익어가는 은행알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보니, 가을은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더라


덧없이, 속절없이 세월은 빠르기도 하여라 ^^










온라인의 인연으로 맺은 30년 이상된 친구가 ... 집필작업 하는 곳 신도림 디큐뷰씨티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












重庆和四川的酸辣粉 - Suan La Fen






















오마이 뉴스에 올라온 기사에 일본인에 의해 제작된 TV프로그램 영상으로, 숙연한 마음과 함께 눈물이 난다.


일본인마저 울린 45분짜리 '안중근' 영상


안중근의 미완성 걸작 '동양평화론'은 충돌을 원치 않는다. 안중근, 그는 어디까지나 중국과 조선과 일본의 운명공동체를 꿈꿨던 이상론자이면서 또한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공부가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그를 침략주의 야욕에 불타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민족의 영웅으로만, 일본에서는 초대 총리대신을 암살한 테러리스트로만 받아들인다.

둘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때문에 외부에, 이를 테면 일본 매스컴에 추도식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리는 순간 충돌은 쉽사리 짐작됐다.

아 마도 2월 중순이었을 게다.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아래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의 "안중근 장군 추도식을 도쿄에서 열자"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이 사람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즈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기국회에서 "안중근은 당시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을 살해해 사형을 받은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테러리스트라는 말만 들어가 있지 않을 뿐, 저 표현에는 안중근에 대한 아베의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그 어느 때보다 걱정되는 지금, 안중근 추도식을 도쿄 한복판에서 연다는 것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한 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때 정 대표가 한 말은 무척 흥미로웠다.

" 그러니까 여는 것이다. 안중근 정신은 일본인들까지 감화 시킬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는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꿈꾼 성인이다. 지금 한국·중국·일본의 상황을 봐라. 지금이야말로 안중근 정신을 되새겨 한중일 삼국이 주도하는 동양평화를 논해야 할 시기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45분짜리 동영상을 소개했다. 그 동영상은 1995년 7월 일본 공중파에서 방영된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이었다. 이 방송을 본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글과 아래의 첨부 이미지와 유투브 영상 출처 : 아래링크

자세한 내용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http://goo.gl/B4gTmR




지난 26일 도쿄 한국YMCA 지하 강당에서 열린 안중근 장군 104주기 추도식




'Natur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重庆和四川的酸辣粉 - Suan La Fen  (0) 2015.04.26
봄날은 간다 !  (1) 2014.05.01
30년 무명가수 나미애 - [님은 먼곳에]  (0) 2014.03.24
중국의 예술은 정말 놀랍구나  (0) 2014.03.17
시절인연 時節因緣  (0) 2014.01.26



가슴먹먹한, 이미 오래전 듣고 또 들어 닳고 닳은 곡, 새롭고 감동적인 가창력이군요.
노래하신분의 섫음이 담긴 목소리...이런게 진짜 노래지 싶습니다.


아래쪽엔 박현정이 부르는 영어가사의 [님은 먼곳에]....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같은 노래인데 어떤 감정을 실어 부르는지에 따라 매우 다른 감성을 자극하는군요.














시절인연 時節因緣

사람과의 만남도,일과의 만남도,소유물과의 만남도,깨달음과의 만남도,유형 무형의 일체 모든 만남은 모두 때가 있는 법이다.

정확한 법계의 이치에 따라 꼭 만나야 할 바로 그 때가 있는 법.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지천에 두고도 못 만날 수 있고,
아무리 만나기 싫다고 발버둥을 쳐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 밖에 없다.

모든 마주침은 다 제 인연의 때가 있는 법이다.
그 인연의 흐름을 거스르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주적인 질서다.

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된다.
다만 아직 인연이 성숙하지 않았을 뿐. 만나야 할 일도, 만나야 할 깨달음도 인연이 성숙되면 만나게 된다.

열심히 일 하고 공부했는데,분명 능력은 다 갖추고 있는데 아직 직장을 가지지 못했다고?
무엇 하나 그리 부족한 것도 없는데 제 짝을 찾지 못했다고?
열심히 참선하고 정진했는데 깨달음은 찾아 올 생각을 안 한다고?

아직 시절 인연을 만나지 못한 탓이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거의 다 올라왔는지, 중간 만치도 못 올라왔는지 아직 시작도 못 했는지 상대편에서는 볼 수 없지만 분명 그 사람은 꾸준히 계단을 오르고 있고, 언젠가는 계단 위의 사람들에게 불쑥 얼굴을 보일 때가 있을 것이다.

이렇듯 시절 인연은 겉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안으로 안으로 전체적인 질서에 의해 여무는 것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고, 만나길 원해도 인연이 성숙하지 않았다면 아직은 차분한 마음으로 더 기다려야 할 때다.
안으로 인연의 씨앗이 잘 싹 틀 수 있도록 잘 가꾸어야 할 때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너무 보고 싶어 안달하지도 말라.성급하게 생각지 말라.

시절 인연이 되어 만남을 이룰 때, 그 때 더 성숙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다만 자신을 가꾸라.
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내 밖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내 안의 바로 그 싫은 부분을 만나는 것이며,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이기의 일부분이 상대로써 투영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은 내 안의 놓치고 있던 나를 만나는 숭고한 '나를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가지지만 그 만남을 아무 일도 아닌 양 그저 쉽게 소홀히 흘려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그 모든 사람은, 설사 그것이 아주 잠깐 스치는 인연일지라도 진지하고도 분명한 우주적인 메시지를 담고 온다.
다만 우리가 그 만남의 의미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보지 못하는 것일 뿐.

모든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성숙과 진화를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볼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 모든 만남은 영적인 성숙의 과정이요 나아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달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아직 존재의 본질에 어두워 만남 속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할지라도 그 만남을 온 존재로써 소중히 받아들일 수는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이나 펼쳐지는 '만남'의 진리를 진리로써 온전히 받아들이고 소중히 가꾸어 갈 수는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부처요 관세음보살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이든, 싫은 사람이든, 적이든, 내 편이든, 이익을 주는 사람이든, 손해를 주는 사람이든, 그 모든 사람이 내게 진리의 메시지를 전해 주기 위해
이 법계에서 보낸 부처요 관세음의 화신인 것이다.

결코 만남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그 어떤 만남도
내게 어떤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음을 알라.
이를테면 첫 만남에서부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를 강하게 만들기 위한,
내 과거의 탁한 업을 녹여주기 위한,
또 내 안의 미움을 생생하게 비춰주기 위한
법계의 배려로써 내 앞에 나타난 인연일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종류의 만남은 다 좋은 것이다.
좋고 싫은 것 가운데 좋은 쪽을 택하는 그런 상대적인 좋음이 아닌
좋고 싫음이 없는 전적인 좋은 그런 것이다.
당장에는 나쁜 만남인 것 같아도
전체적인 관점, 전 우주적인 관점,
내 전 생애에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만남은 내게 좋은 만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실을 올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모든 만남을 맑고 향기롭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내면이 성숙하면 만남도 성숙하지만
내 내면이 미숙하면 만남도 미숙할 수 밖에 없다.
미숙한 사람에게 만남은 울림이 없고 향기가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이 빛을 보면
시절 인연을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온 우주와 만날 수 있다.
그 누구와도 이미 청정한 만남은 이루어 진 것이다.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일과 직업이,
바로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소유물들과의 만남이
바로 지금 내 주위에서 매일같이 부딪치는 사람이며 친지, 친구, 가족들이
그렇게 내가 꿈에도 그리며 찾아 해매던
‘바로 그 사람’이요, ‘바로 그 만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만남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모든 만남은 붓다의 선물이요 신의 사랑이다.
아니 우린 항상 부처를 만나며 신과 함께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
만남의 눈을 뜨고 내 주위를 살펴보자.

-법상스님

========================================================
시절인연 時節因緣

불가 용어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게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무진장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나 일, 물건과의 만남도,
또한 깨달음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는 법이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갖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 밖에 없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내품 안에, 내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재물 때문에 속상해 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섭섭해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혜범스님

========================================================


P.S : 혹여 글은 퍼가셔도 무방하지만 첨부된 이미지는 가져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만든 이미지이면서 비록 뒷 모습이지만, 저의 초상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갈대숲, 갈대피리, 갈대의 노래, 갈대의 춤, 갈대의 순정, 갈대의 추억, 갈대의 아련함, 갈대같은 마음, 가을 끝에 만나는 갈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따뜻하고 영롱한 태양빛이 편안하고 반짝인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휘몰아치는 초겨울의 골바람에 흩날리는 마음처럼 마구 휘젖는 갈대더라~~~~~~~~~~~!

































http://youtu.be/J0Ik2MiDQrA


두팔없는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인데 화면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퍼다가 다시 올립니다.
이전에 두팔없는 남자가 시계수리점을 운영하는 영상을 TV에서 본적이 있는데, 이 영상은 그것보다 더 대단한 분 같습니다.

이전의 시계수리공 남자나 지금 이 영상의 여인 모두 중국인인데, 두팔없이도 일상의 정교한 모든 일들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팔다리 멀쩡한 비장애인 우리 모두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할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사이즈의 이미지를 볼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이후 피폭의 무서움을 전합니다.
고이데히로아키 선생의 강연입니다

탈핵 ,고이데히로아키(小出裕章) JOC 임계 사고로 보는 피폭의 비참(被曝の悲惨)
http://www.youtube.com/watch?v=hBDuit4kxJE





일본어 원판은 아래입니다.

【大切な人に伝えてください】小出裕章さん『隠される原子力』
【소중한 사람에게 말해】 코이데 히로아키 씨 "숨겨지는 원자력"
http://www.youtube.com/watch?v=4gFxKiOGSDk




[원자력사고] 체르노빌의 전투 The Battle of Chernobyl
http://www.youtube.com/watch?v=pA0cHd1KXms





애플에서 퇴임한 31세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다음(NEXT) 도전





스티븐 폴 "스티브" 잡스(영어: Steven Paul "Steve" Jobs,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는 미국의 기업인으로, 애플의 창립자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또한,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1985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이끌었다.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

또한,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인크레더블》과 《토이 스토리》 등을 제작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소유주이자 CEO였다. 월트 디즈니 회사는 최근 74억 달러어치의 자사 주식으로 이 회사를 구입하였다. 


2006년 6월 이 거래가 완료되어 잡스는 이 거래를 통해 디즈니 지분의 7%를 소유한, 최대의 개인 주주이자 디즈니 이사회의 이사가 되었다. 한편 그는 2004년 무렵부터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그의 악화된 건강상태로 인하여 2011년 8월 24일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책임자(CEO)를 사임하고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이 새로운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잡스는 CEO직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키로 했으나,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사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1년 10월 5일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해외 Wallpapers 사이트에서 가져온 아름답고 멋진 홍콩(Hong Kong)의 야경 사진

2880 x 1800 사이즈, 이미지 클릭시 원본 크기로 볼수 있음





위에 사진들을 촬영하는 피크타워 스카이 테라스(The Peak Tower Sky Terrace) - 홍콩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


2015년 9월 5일 추가 합니다.


이 글을 쓴게 2013/04/07 12:19 인데............

그 이후 어느날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면서, 제목을 "시절인연"이라 붙였는가봅니다.

"시절인연"을 포털에서 검색하면 이 글로 연결이 되나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 정확한 시절인연의 의미는 "시절인연 時節因緣" 입니다.

그나저나 왜 이 영화가 한국 개봉때의 제목이 "시절인연"이었던가 궁금하네요.

"시절인연"의 진정한 의미를 대입할 정도의 스토리는 아니던데.......


北京遇上西雅图(북경에서 시애틀을 만나다 Finding Mr.Right, Anchoring in Seattle)

감독 : 쉐샤오루(薛曉路)
개봉일 : 2013년 3월 21일 (중국)
출연 : 탕웨이(湯唯), 우슈보(吳秀波), 하이칭(海清)

문가가(탕웨이 분)는 재벌 사업가의 세컨드로, 그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합법적으로 결혼한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출산허가증(准生證)을 발급받지 못해 미국으로 가서 원정출산을 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을 좋아하던 그녀는 큰 고민없이 출산지를 시애틀로 정한다.
그 곳에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Frank(오슈보 분) 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는 러브스토리.











예고편 동영상과 이미지 출처 : 중국 사이트에서 빌려온 것들임



탕웨이(汤唯) – The Theme Song Of Late Autumn

만추의 중국 개봉을 기념하여 탕웨이가 직접 부른 중국어 버전 주제곡





아래는 탕웨이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Swordsmen [武俠 - Wu Xia] 2011 스틸컷

위 이미지는 영화 武俠 내용중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아래 이미지들은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함께찍은 장면일텐데 실제 영화 내용중에는 나오지 않지만 탕웨이의 멋진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유투브 영상을 보면 武俠 촬영현장과 인터뷰 장면이 나옵니다.

각 이미지 클릭시 원본 크기로 볼수 있습니다.



女主角汤唯演的虽然是纯朴的村姑,但是好像比《色戒》里更漂亮了。









산뽀니아는 대나무로 만든 팬파이프의 일종으로 남미 안데스의 전통악기이며 잉카제국 이전부터 있었던 수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악기로써 현재에 이르러서는 께나와 나란히 민속 음악의 본고장인 안데스(andes)지역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악기이다.
음색은 산의 메아리나 지나가는 바람 소리같은 애수를 띠고 있으며, 인디오 언어로는 시쿠리(Sikuri)라고도 한다.

안데스 음악은 잉카 문명이 발생한 곳인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한 "에콰도르","볼리비아"."페루","칠레","북아르헨티나"지역의 음악을 일컷는다.





Orlando(올란도) 칠갑산 / 출처 : http://goo.gl/wzGJc







강산이 세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건만 내게있어 지금까지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로 기억이 되는 그것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Les Uns Et Les Autres 1981)


180분이라는 긴 시간때문이었지 싶은데, 당시 TV로 방영이 되면서 1부와 2부로 나누어 방영을 했었고, 그 몇년후에 재방영을 했었다는데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늘 오래전 기억으로 살아있던 영화를 최근 다시 보고싶어서 아주 어렵게 DVD를 구하고 보니, 오래전의 영상기술이 현재와 달라서인지 화질이 많이 미흡하긴해도 당시의 감흥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여운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둔다.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Les Uns Et Les Autres 1981)


음악 : 프란시스 레이, 미셀 르그랑
출연 : 제럴딘 채플린, 제임스 칸, 로베르 오셍셍, 니콜 가르시아, 자크 비유레, 파니 아르당.

1936년에서 1980년까지 프랑스,독일,러시아,미국 등 4개국 세기의 예술가들인

1936년 모스크바의 발레 댄서 - Rudolf Nureyev (소련, 발레리나, 1961 망명)
1937년 빠리의 음악가 - Edith Piaf (프랑스, 샹송가수)
1938년 베를린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 Herbert von Karajan (오스트리아, 베를린 필 지휘자)
1939년 뉴욕의 재즈 뮤지션 - Glenn Miller (미국, Jazz Trombonist)

반세기동안 이들이 살아온 기구한 인생역정과 예술세계와 이데올로기 전쟁 그 후의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해서 제작한 영화로 그 치밀한 구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20세기 빛나는 영화이다.

같은 시간대의 각기 다른 도시에서 살아낸 제2차 세계대전 전후 1936년에서 1980년까지 45년에 걸친 이야기를 <남과 여>의 감독 끌로드 를루슈가 180분짜리 대하 드라마로 만든 대작이다.

그들 자신(지휘자)과 2,3세(댄서, 남녀 가수)들이 1980년 빠리에 모여 펼치는 유니세프 자선 콘서트의 하일라이트인 '볼레로' - 주역 댄서는 조르주 돈 (모델 : 누레예프), 안무를 맡은 모리스 베자르가 이끄는 20세기 발레단 단원들과 함께 춤추는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모리스 라벨(Mauris Ravel)이 작곡한 볼레로(Bolero)가 연주되는 가운데 에펠탑 맞은편 트로카데로 광장에 설치된 원형 무대에서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가 남자 무용수들과 함께펼치는 무용 '볼레로' 공연은 파란만장한 네 주인공의 반생이 응축돼 펼쳐지는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약 30여년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때와 지금에 와서 다시 보는 감상의 느낌이 달라졌다면, 에펠탑과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펼쳐졌던 이 공연의 현장을 그리고 빠리시내 전경을 몇번의 프랑스 방문으로 눈에 익히고 기억하고 있기에 좀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이겠다.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Les Uns Et Les Autres 1981) 이야기속의 실존 인물들


1937년 빠리의 음악가 - Edith Piaf (프랑스, 샹송가수)



1939년 뉴욕의 재즈 뮤지션 - Glenn Miller (미국, Jazz Trombonist)



1938년 베를린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 Herbert von Karajan (오스트리아, 베를린 필 지휘자)



1936년 모스크바의 발레 댄서 - Rudolf Nureyev (소련, 발레리나, 1961 망명)







해외 사이트에서 고화질 Wallpapers를 들여다 보다가 멋지게 보이는 이미지 하나를 발견하고

찾아들어가다 보니 2013년 2월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 포스터인데.....


영화 스토리는 둘째고, 우선 포스터를 보는 순간 시선을 집중하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로맨스가 있음직한 느낌??


스웨덴 출신감독 라세 할스트롬(Lasse Hallström)의 로맨스 영화 세이프 헤븐(Safe Haven)이네요.


영화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순전히 포스터 사진이 멋져보여 포스팅  ^_^











2013 월드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쉽
김연아 선수의 쇼트 프로그램, 프리 스케이팅, 갈라까지 영상 모음.



김연아 선수 갈라 (Closing Gala)




김연아 선수 프리 스케이팅 (Free Skating)




김연아 선수 쇼트 프로그램 (Short Program)



일때문에 한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침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6시 30분경이었습니다.
갑자기 온도가 떨어져 약간은 한기를 느끼게 하는 아침 날씨 탓에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 듭니다.


비행기 계류장 뒤편 동쪽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입구 - 햇살이 퍼지면서 주위가 밝아지고 갖가지 사연을 안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기위해 속속 출국장을 향해 모여듭니다.

아침 햇살이 출발 수속장 실내에까지 들어와 비칩니다.  인천국제공항 A 카운터에서는 국내선 탑승도 가능하더군요.

비행기 출발시간이 남아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아침식사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항공사 라운지에 앉아서 밖을 내다 보니 각지로 가는 비행기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20대 초반 군대를 가기전 그리고 제대를 하고 복학하기전 까지 공항에서 수출입 통관과 관련한 일을 했던 경험과, 사회에 진출하고도 몇년동안 공항에 필요한 보안장비와 각종 디스플레이 기술개발 관련일을 하면서 공항과 인연을 맺었던지라 지금도 공항에만 가면 항상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가며 매우 친숙한 느낌이듭니다.

그리고 간단한 여행용 가방을 챙기고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면 어딘가를 향해 새로운 세계로 간다라는 약간의 설레임과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구나하는 편안함도 곁드려 상쾌한 기분마져 듭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출발을 기다리며 라운지에서 식사와 차를 마시고 신문을 보거나 인터넷으로 업무를 체크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홍콩쪽 로후(罗湖)역 - 인천공항을 출발 심천에 도착하여 이틀 동안 밀렸던 일을 보고 또 다른 일을 보기 위해 홍콩에 가려고 중국쪽 출국대를 지나서 홍콩쪽 입국 심사를 마치고 홍콩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을 타기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홍콩과 중국 심천을 이어주는 홍콩 전철역 플랫폼 모습

로후(罗湖)역에서 홍콩 시내까지 들어가는 전철 실내 모습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로후(罗湖)역에서 침사추이까지 한번에 갔었는데, 전철 노선이 변경 되면서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합니다.

침사추이에서 홍콩섬쪽으로 바라보이는 모습 - 오른쪽으로 낮으막히 동그란 지붕의 홍콩 컨벤션 센터가 보입니다.

컨테이너 야적장도 보입니다.

최근 스타의 거리에 새로 생겼다는 스타벅스, 일명 별다방입니다.

스타의 거리에 스타벅스가 최근에 새로 생겼다는 소식은 홍콩에 계시는 아이미슈님 블로그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별다방 - 야경과 함께하는 스타벅스"라는 글에 소개하신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 별다방 2층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아래에 보이는 사진의 풍경 처럼 손에 잡힐듯 보이는 홍콩섬쪽의 멋진 모습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전세계 다방중에 이곳 처럼 전망이 좋은 곳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실은 아직까지 홍콩의 날씨가 매우 더워서 낮에는 2층 테라스 보다는 실내의 에어컨 바람이 더 편한데,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별다방을 편하게 즐기려면 야간이 좋습니다.

이소룡, 이 아저씨는 맨날 이자리에 폼잡고 서있는데, 이 자리에 서있는게 아마도 약 3년째 정도 되지 싶습니다.  이소룡 사후 몇십년인가?  아무튼 뭐 그런 의미를 기념해서 이자리에 세운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바다건너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처럼 생긴 홍콩 컨벤션 센터가 보입니다.

위에 보았던 홍콩 컨벤션 센터쪽 분위기와 지금 보는 이 풍경은 전혀 다른 지역을 보고 있는듯 하지만, 위에 보았던 컨벤션 센터 왼쪽 지역으로 보이는 풍경입니다.

해변을 걷다가 날씨가 더워서 땀도나고 목도 말라서 잠시 벤치에 앉아 목을 축이며 쉬는중에 지나가는 여인네의 뒷모습을 살짝 몰카 ~ *)*

석양을 등지고 저 앞에 크루즈 관광선이 보이는군요. 그런데 저 크루즈선은 언제나 저곳에 자리잡고 있는지라 언제 운항을 하는지 알수가 없군요.  바다여행을 위한 크루즈선인지 아니면 모양만 닮은 해상 호텔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아이미슈님은 아실듯 한데....설명 부탁해요. ㅋㅋ

좌측 멀리로 크루즈선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홍콩예술관 광장에 서있는 시계탑이 보입니다.

예술관 시계탑 광장의 휴식공간

홍콩예술관의 멋진 외관 모습

홍콩예술관 측면

홍콩예술관 시계탑 광장에서 바라본 모습

Canton Road로 가는 길목에 있는 상가 모습

이곳 Canton Road로에 있는 듀티프리샵에서 잠시 쇼핑도 하고....... 슬슬 시장기를 느끼면서 식사를 하기위해 아래 청킹맨션쪽으로 이동.

쇼핑가와 환전상이 모여있는 청킹맨션(광동어로 청킹, 보통어로는 총칭따샤) 근방인데, 이곳은 주로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동남아 호객꾼들이 많아서 이곳을 지날때마다 항상 약간은 긴장을 하게되더군요.

청킹맨션을 좀더 가까이에서 들여다 봅니다.

날도덥고 땀은 삐질삐질 여기저기 걷고 걷다보니 슬슬 배가 고파지면서 피곤이 엄습해옵니다. 자주 지나다니던 길목에 있는 한국식당 三木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합니다.

한국식당 三木의 실내 인테리어가 아늑해보입니다.  저는 이미 현지 음식에 충분히 적응이 되어 있기도 하고 한국 식당의 음식값이 대략 좀 비싼편이라 자주 가지는 않지만 이번엔 오랜만에 한번 들러봅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거리를 지나며 쇼윈도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쳐다보며, 야간이라 촛점이 흔들렸네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셔터를 눌러봅니다.

홍콩하면 명품 쇼핑을 떠올릴 정도로 다양한 유명 제품들이 즐비합니다. 이집도 쇼윈도를 통해 슬쩍 들여다 봅니다.

지나다 보니 길거리에 재미있는 아이스크림 노점상이 있네요. 조그마한 차량을 길가에 대놓고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럴때 또 촛점이 안맞는군요. ㅠ.ㅠ

휘황 찬란한 조명아래 계속 이어지는 상가들...........

구룡공원 앞을 지나면서 셔터를 눌렀는데, 또 흔들리고 말았네요.

걷는 중에 너무도 더워서 아무곳이나 가까이 있는 호텔 로비에 들어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땀도 식히고 갈증도 해소합니다.

잠시 쉬는 동안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봅니다.  호텔 천정에 매달려 있는 샹제리등

이렇게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심천에서 차한잔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꼬꾸라져 잤습니다.
여러가지 일정때문에 며칠간을 빡빡하게 보내고 지금까지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  피곤해 ㅠ.ㅠ


뜨겁던 어느 일요일 바닷가에 갔다가, 해수욕엔 관심 없고 모래 사장에서 만난 작은 게랑만 놀다가 왔다.


언제 또 올건데?  라며 두눈을 쫑긋 세우고 쳐다본다.


심천 시내 중심가에서 약 30~40분 거리에 있는 자연 휴양림으로 걷거나 차를 가지고 드라이브하면서 자연을 만끽할수 있도록 잘 가꾸어진 선호식물원-仙湖植物园(화석삼림) 숲입니다.

걸어서 돌아본다면 아마도 3~4시간 정도는 넉히 걸릴만한 넓이의 자연 공원으로 특이할만 한것은 1억3천5백만년전 지구의 화산 대폭발 당시 생성된 나무 화석을 모아둔 곳이 있는데 질감은 분명 돌과 같은데 나무의 무늬나 모양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내몽고와 티벳쪽에서 가져와서 모아놓은거랍니다.


공원내 식물원

공원내 등산로 안내 이정표

공원내에 있는 전망대

공원내에 있는 중국의 산사(우리나라 절과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중국의 절은 지붕과 건물벽의 색상이 대부분 이와 비슷)

온실속의 선인장(우리나라 제주에 있는 식물공원과 비슷)

1억3천5백만년전 지구의 화산 대폭발 당시 생성된 나무 화석들, 아마도 이때 공룡이 살던 시대겠지요?

육안으로 보기에는 분명 나무가 맞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돌처럼 굳어진 화석입니다.

호수 건너편 반대쪽에서 바라본 나무 화석을 모아놓은 곳

잘 가꾸어진 공원의 잔듸밭
잔듸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뭐 그런거 없습니다.  원한다면 언제 어느곳이든 잔듸밭에 들어가서 맘껏 뒹굴며 놀수 있습니다.



전에 잠시 나들이겸 다녀온 "기린산장"이라는 곳입니다.

시내에서 약40분 거리에 있는 참으로 아름답고 예쁘게 잘꾸며져 있으며 매우 조용하고 고즈녁한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산장입니다.


가로수에는 이름모를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기도 하고,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거나 기업들이 하루정도 별장을 임대하여 단합 모임을하거나 모임겸 휴식 장소로 쓰이는 산장입니다.


어느 주말에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우연히 들렀던 곳인데 전에는 VIP들을 모시는(??) 곳이었다가 지금은 일반인들도 이용이 가능하다는군요.

언제 기회되면 날잡아서 이곳에서 숙박하면서 휴식을 즐겨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에 여유를 느끼면서 즐겨야 하지 않을까 싶어 지금은 열심히 일을 합니다. ㅎㅎㅎ

산장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안내도 입니다.

영화속에나 나올법한 자연속의 그림같은 집입니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늘 푸르른 남국의 정취를 보여주는 나무들입니다.

산장안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호수

잘 가꾸어진 조경이 아름답습니다.

두리안이라는 과일 처럼 크고 겉모양도 비슷하지만 두리안은 아닌데, 이름모를 과일이 특이하게도 나무 기둥에 매달려 자라고 있습니다.

하루정도 묵으면서 맛있는 만찬과 즐거운 마작과 포커 놀이가 이곳 사람들이 주로 즐기는 놀이들입니다.

색색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자연미

시원한 그늘 평상에 누우면 잠이 솔솔 오겠지요?

일년내내 따뜻하거나 덥거나 한 기후라서 그런지 나무가 자라면서 위에서 부터 새로운 뿌리들이 무수히 자라 여러갈래의 줄기를 이루거나, 나무기둥과 합쳐져서 연리지목 처럼 되는 수종들이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아름답고 조용하고 휴식의 공간으로는 최적인 곳입니다.


내 고향 충청도하고도 제천 어딘가에가면 이런게 있단다.
자연에서 생겨난 이것이 어쩜 이토록 닮았을까???  뭘 닮았느냐고?  ㅋㅋ
아는이 블로그에서 집어온것....................!


장맛비 그치고 하늘이 열릴때 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줄기 빛.......과 물들어가는 노을 빛에 실루엣으로 변해가는 또 다른 모습들
.....

국철이 지나는 창가에서 똑딱이로 몇컷
본 글을 퍼가거나 스크랩할 경우 반드시 출처를 명기해주시고 퍼가는 곳에 대한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 쏘울 -

중국 광동성 심천에 있는 민속촌 입니다.

민속촌이라 하면 용인에 있는 민속촌 처럼 실물과 똑같은 건물과 거리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곳은 많은 부분이 미니어쳐 또는 축소 모형으로 이루어진 민속촌입니다.
많은 부분이 미니어쳐 또는 축소 모형이라서 마치 소인국에 온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축소 모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중국 국토가 넓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문화재들을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까 미니어쳐를 생각해낸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56개 소수민족이 각자의 고유 문화를 가지고 일부 민족의 경우는 그 소수민족만의 고유 언어(조선족도 이에 속하지요)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주 다양한 민속 문화를 자랑합니다.
56개 민족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보다 더 많은 소수 민족이 존재하는데, 중국 정부의 정책에 의해 통폐합 되면서 56개 소수민족으로 분류관리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민속촌이 미니어쳐 같은 축소형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의 모습과 똑 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영화를 촬영하듯이 확대해서 찍으면 실제의 문화재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진중에는 실제 소수 민족이 자기들의 고유 문화를 보여주는 공연과 생활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사진을 한꺼번에 많이 올려서 속도가 좀 느려지겠지만 천천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2009년 4월 23일 동창모임 카페 게시판에 올렸던 글>


아마도 국민학교 4학년때 였지 싶은데,

오후 수업시간에 키가크고 광대뼈가 살짝 나온 멋쟁이 송석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노래 잘하는 사람을 뽑는단다.

나름 이미 알려진 꽤꼬리 목소리를 가진 친구들을 호명할때, 난 당연히 해당없음을 잘 알기에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창밖을 응시하고 있던 찰라 귓전으로 들리는 내 이름에 정신이 번쩍 들어 앞을 바라보노라니 분명 내 이름을 호명하고 있잖은가.

순간, 이건 아닌데 난 어디에서도 남들 앞에 나서서 노래를 불러본적도 없고 통신표 음악 과목에 "수"를 받아본적도 없는데, 왜(Why?) 나를 호명 하는 걸까?????

에이~! 저 노츠녀 여선생님이 뭔가 착각을 하신게지~!


아무튼 그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살미국민학교 합창단원이 구성되었던것이었다.


나중에 풍문으로 들은 얘기에 의하면.....빨간색 반바지와 하얀색 상의 그리고 빨간색 모자와 쬐끄만 넥타이 유니폼을 입으면 촌놈들인 친구들이 놀려 댈까봐 누구도 선듯 나서서 저요 저요 저 합창단 시켜주세요...하는 년놈들이 없다 보니 선생님의 직권으로 할만한 남여 학생들을 추렸던 것이었고, 그중에 나는 볼것도 없이 내 누이의 영향으로 저놈은 지네 누이가 그림을 잘 그리니까(당시 이호일 선생님이 미술 특활반을 지도하고 있었음)

보나마나 노래좀 하지 않을까 라는 이상한 논리로 낙점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달간 나머지 공부하듯 방과후 남아서 합창 연습을 하고, 드디어 충주에서 합창대회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얼마전 청평모임때 이 얘기를 하다 보니 장병선이도 이때 멤버였다고 했던가?(난 잊고 있었음)

나름대로 열과 성의를 다해 연습하고 출전을 했는데, 산골 촌놈들이다 보니 충주 시내 구경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하던 시절 충주 시내가 어찌 그리 으리으리하던지 감개가 무량(??) 긴장(??) 초조, 두리번 두리번, 얼굴들은 햇볕에 그을어 까무잡잡하고 촌티가 줄줄 나는 모양새들이라니....

하지만 충주교현국민학교 강당에 모인 다수의 충주시내 학교 경쟁상대들은 얼굴색이 뽀얕고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귀티(??)나는 자태, 더하여 이쁘장하게 생긴 여학생들, ㅎㅎㅎ 에고 비교된다 비교돼~!


긴장에 긴장을 더하여 우리차례에서 합창을 마치고 혹시나 등수안에 들까 싶었지만 혹시가 역시가 되었지만 멀리 시골에서들 왔다고 등외로 위로의(??) 상품을 받았던가 아무튼 그랬다.


이제 그당시에 합창단 멤버였던 친구들 손좀 들어봐라........!


아마도 장변선, 민광기.....다른 친구들 자수좀 해보시게나들


요 며칠 바빠서 잠도 부족하고, 오전에는 거래처 순회, 잠시전에 돌아와 커피한잔 마시면서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내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합창단의 기억을 끄집어 내본다네.

내가 서울 살이를 시작 하게된 것은 고등학교를 충주에서 마치고 곧바로 상경을 했던 1978년인지 1979년 초인지싶은데, 그 당시 내가 몇년동안 다니던 회사가 북창동(남대문 시장 길 건너편, 한국은행 뒷편)에 있었는데 한달에 몇번씩 하는 회식때면 한길건너 남대문시장 골목에 있던 닭곰탕을 먹으러 잘 다녔다.


그때의 그집이 아래 기사에 나오는 "강원집"이다.

한국에 가면 반드시 그 강원집 닭곰탕을 먹고말테야 하고 벼르고 별렀건만 아직 못가봤다.

아래 사진의 쭈그러진 양은 냄비에 담긴 닭곰탕 그리고 양념장이 얹어진 모양세는 벌써 몇십년이 흘렀건만 변함이 없다.


더하여 변함없는 그때 그맛을 느낄수 있다라는 기사 내용을 보자니, 몇십년 전에 즐겨 먹던 그맛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입안에 침이 가득고이누나......!

당장 달려가서 한냄비 그리고 쐬주한잔 캭~~~~


남대문시장 강원집 닭곰탕 번개 안하나???? ㅋㅋㅋ


아래 기사는 우연히 모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다가 옛생각이 나서 퍼온글임.


서울에 아직도 이런 집이 남아있어?

남대문 갈치골목 강원집 닭곰탕
09.04.03 11:34 ㅣ최종 업데이트 09.04.03 11:3  이덕은 (hanok98)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추억의 도시락 같은 거.

 

지난 번 남대문 갈치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닭곰탕집을 하나 보았는데 유리창 너머로 보니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찢은 닭고기를 넣어 놓은 것이 그 옛날 버드나무집을 떠올리게 만든다.

 

  
옛날에는 시청 근방을 ‘멕여살릴’ 정도 규모의 남대문 시장이었지만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번화가가 되어버린 숭례문 부근 빌딩가.
ⓒ 이덕은
닭곰탕

 

혹시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고 검색창에서 버드나무집을 찾으니 온통 강 아래 고깃집만 나온다. 내가 찾으려는 건 주머니 생각하지 않고도 즐겨 먹을 수 있던 닭곰탕집인데도 말이다. 버드나무집은 온 나라 자동차 댓수가 백 만 대 아니 수 십 만 대도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 귀에 낯선 기사식당이란 단어를 만들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갈치골목. 그래도 근방에 이렇게 서민이 숨쉴 공간이 남아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낮에는 갈치골목에서 줄서는 일은 다반사이다.
ⓒ 이덕은
남대문시장

 

내가 살던 집 골목에서 나오면 바로 버드나무집이 있었는데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지금에야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해주는 업체가 따로 있어 거의 비슷한 김치나 깍두기를 이집 가도 먹을 수 있고 저집 가서도 먹을 수 있지만, 식간을 이용해서 배추와 무를 길거리에 쌓아놓고 다듬는 광경은 그것만으로도 구경거리였다.

 

아줌마들이 아기 목욕통으로 쓸 만한 커다란 함지를 두세 개 갖다놓고 차고 앉아 커다란 연필 깎듯이 배추를 부엌칼로 툭툭 치면 10센티 전후로 제멋대로 잘린 배추조각이 쌓인다. 그 위에 고춧가루, 마늘, 파, 소금, 미원를 뿌리고 벌겋게 버무리는데 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몇 입 나누어 먹어야 될 정도의 크기로 썩썩 잘랐다.

 

요즘에야 설렁탕집에서 가끔 보는 그런 커다란 깍두기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커다란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거기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원을 넣었는데 그게 무슨 음식이냐고 탓하지 말라. 그 때는 배웠다는 주부들도 거의 모든 음식에 미원을 쳤으니까. 

 

  
그 골목을 지나며 낯익은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쭈그러진 양은냄비에 담긴 닭고기.
ⓒ 이덕은
강원집

 

닭고기 기름 많은 것 아시지. 지금에야 '껍질 빼고 기름 빼고'지만 그런 게 어디 있어. 양은 냄비에 주욱죽 찢어놓은 닭고기와 육수를 붓고 밥 넣고 다대기 한 숟갈 넣고 펄펄 끓여 파 송송 썰은 것 얹고 커다란 깍두기와 국물 넉넉한 배추김치와 마늘을 곁들여 나오면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드-은해지는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 이덕은
강운집

 

그런데 그런 양은 냄비와 닭을 보았으니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제대로 먹으려면 닭곰탕을 시켜야겠지만 동행이 있으니 닭곰탕만으로는 안주가 되지 않는다. 문간 옆 조리대에서는 방금 삶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닭을 커다란 쟁반 위에 놓고 손으로 뜯어 접시에 담고 있는데 닭 한 마리 시키니 양은냄비에 곰탕국물을 곁들여 준다. 닭국물이 달긴 하지만 미원을 약간 가미한 것 같은 맛과 질긴듯하면서도 졸깃한 닭고기 씹는 맛이 옛 맛과 비슷하다. 국물이 식으면 자동적으로 육수를 첨가해서 다시 끓여주니 맘이 흐뭇하다.

 

  
점심시간에 점잖게 혼자서 한 상 차지하고 먹고 싶다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 이덕은
닭곰탕

 

요새야 닭 조리법이 다양해졌지만 튀길 기름조차 귀하던 때에는 그저 푹 삶아 국물도 내고 백숙으로 고기도 뜯어 먹는 것이 제일 간편한 조리법이었을 것이다. 푹 고은 닭을 건져 찬물에 손가락을 식혀가며 다리 비틀어 내어 어른들 몫으로 따로 남겨두고, 닭 날개 뜯어서 '바람 필까봐' 남정네 못 먹게 감추어 두고, 수탉 잡으면 '벼슬하라고' 닭 벼슬은 아들에게 따로 떼어주고, 가슴살은 발라서 국거리로 남겨두고, 뱃속의 미숙란과 똥집은 내가 먹고, 국물에는 대파를 송송 썰어 얹어 내었으니 이만큼 추억과 정감이 배어있는 음식을 보기 쉽지 않으리라.

 

  
닭곰탕. 점심시간만 아니라면 마늘 한 조각 고추장에 찍어가며 먹을텐데...
ⓒ 이덕은
달곰탕

 

국밥이라는 것이 체면 차리고 먹는 음식이 아니다. 할 일도 많은데 장소 구애받지 않고 솥 걸어놓고 끓여 사발에 국 푸고 밥 집어넣어 깍두기 하나 놓고 먹는 음식이니 애시당초 점잖게 격식 차리고 먹을 거면 들여다보지도 말아야할 음식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곱창이나 꼼장어처럼 신분 상승된 음식이 하도 많아 아직도 제 분수를 알고 있는 이런 음식을 보면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워진다.

 

  
약간 질기면서 쫀득한 식감. 무슨 고기인지는 짐작 가지만 질을 따진다면 국밥 자실 자격이 없다.
ⓒ 이덕은
닭곰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