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3일 동창모임 카페 게시판에 올렸던 글>


아마도 국민학교 4학년때 였지 싶은데,

오후 수업시간에 키가크고 광대뼈가 살짝 나온 멋쟁이 송석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노래 잘하는 사람을 뽑는단다.

나름 이미 알려진 꽤꼬리 목소리를 가진 친구들을 호명할때, 난 당연히 해당없음을 잘 알기에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창밖을 응시하고 있던 찰라 귓전으로 들리는 내 이름에 정신이 번쩍 들어 앞을 바라보노라니 분명 내 이름을 호명하고 있잖은가.

순간, 이건 아닌데 난 어디에서도 남들 앞에 나서서 노래를 불러본적도 없고 통신표 음악 과목에 "수"를 받아본적도 없는데, 왜(Why?) 나를 호명 하는 걸까?????

에이~! 저 노츠녀 여선생님이 뭔가 착각을 하신게지~!


아무튼 그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살미국민학교 합창단원이 구성되었던것이었다.


나중에 풍문으로 들은 얘기에 의하면.....빨간색 반바지와 하얀색 상의 그리고 빨간색 모자와 쬐끄만 넥타이 유니폼을 입으면 촌놈들인 친구들이 놀려 댈까봐 누구도 선듯 나서서 저요 저요 저 합창단 시켜주세요...하는 년놈들이 없다 보니 선생님의 직권으로 할만한 남여 학생들을 추렸던 것이었고, 그중에 나는 볼것도 없이 내 누이의 영향으로 저놈은 지네 누이가 그림을 잘 그리니까(당시 이호일 선생님이 미술 특활반을 지도하고 있었음)

보나마나 노래좀 하지 않을까 라는 이상한 논리로 낙점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달간 나머지 공부하듯 방과후 남아서 합창 연습을 하고, 드디어 충주에서 합창대회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얼마전 청평모임때 이 얘기를 하다 보니 장병선이도 이때 멤버였다고 했던가?(난 잊고 있었음)

나름대로 열과 성의를 다해 연습하고 출전을 했는데, 산골 촌놈들이다 보니 충주 시내 구경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하던 시절 충주 시내가 어찌 그리 으리으리하던지 감개가 무량(??) 긴장(??) 초조, 두리번 두리번, 얼굴들은 햇볕에 그을어 까무잡잡하고 촌티가 줄줄 나는 모양새들이라니....

하지만 충주교현국민학교 강당에 모인 다수의 충주시내 학교 경쟁상대들은 얼굴색이 뽀얕고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귀티(??)나는 자태, 더하여 이쁘장하게 생긴 여학생들, ㅎㅎㅎ 에고 비교된다 비교돼~!


긴장에 긴장을 더하여 우리차례에서 합창을 마치고 혹시나 등수안에 들까 싶었지만 혹시가 역시가 되었지만 멀리 시골에서들 왔다고 등외로 위로의(??) 상품을 받았던가 아무튼 그랬다.


이제 그당시에 합창단 멤버였던 친구들 손좀 들어봐라........!


아마도 장변선, 민광기.....다른 친구들 자수좀 해보시게나들


요 며칠 바빠서 잠도 부족하고, 오전에는 거래처 순회, 잠시전에 돌아와 커피한잔 마시면서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내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합창단의 기억을 끄집어 내본다네.

내가 서울 살이를 시작 하게된 것은 고등학교를 충주에서 마치고 곧바로 상경을 했던 1978년인지 1979년 초인지싶은데, 그 당시 내가 몇년동안 다니던 회사가 북창동(남대문 시장 길 건너편, 한국은행 뒷편)에 있었는데 한달에 몇번씩 하는 회식때면 한길건너 남대문시장 골목에 있던 닭곰탕을 먹으러 잘 다녔다.


그때의 그집이 아래 기사에 나오는 "강원집"이다.

한국에 가면 반드시 그 강원집 닭곰탕을 먹고말테야 하고 벼르고 별렀건만 아직 못가봤다.

아래 사진의 쭈그러진 양은 냄비에 담긴 닭곰탕 그리고 양념장이 얹어진 모양세는 벌써 몇십년이 흘렀건만 변함이 없다.


더하여 변함없는 그때 그맛을 느낄수 있다라는 기사 내용을 보자니, 몇십년 전에 즐겨 먹던 그맛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입안에 침이 가득고이누나......!

당장 달려가서 한냄비 그리고 쐬주한잔 캭~~~~


남대문시장 강원집 닭곰탕 번개 안하나???? ㅋㅋㅋ


아래 기사는 우연히 모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다가 옛생각이 나서 퍼온글임.


서울에 아직도 이런 집이 남아있어?

남대문 갈치골목 강원집 닭곰탕
09.04.03 11:34 ㅣ최종 업데이트 09.04.03 11:3  이덕은 (hanok98)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추억의 도시락 같은 거.

 

지난 번 남대문 갈치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닭곰탕집을 하나 보았는데 유리창 너머로 보니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찢은 닭고기를 넣어 놓은 것이 그 옛날 버드나무집을 떠올리게 만든다.

 

  
옛날에는 시청 근방을 ‘멕여살릴’ 정도 규모의 남대문 시장이었지만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번화가가 되어버린 숭례문 부근 빌딩가.
ⓒ 이덕은
닭곰탕

 

혹시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고 검색창에서 버드나무집을 찾으니 온통 강 아래 고깃집만 나온다. 내가 찾으려는 건 주머니 생각하지 않고도 즐겨 먹을 수 있던 닭곰탕집인데도 말이다. 버드나무집은 온 나라 자동차 댓수가 백 만 대 아니 수 십 만 대도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 귀에 낯선 기사식당이란 단어를 만들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갈치골목. 그래도 근방에 이렇게 서민이 숨쉴 공간이 남아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낮에는 갈치골목에서 줄서는 일은 다반사이다.
ⓒ 이덕은
남대문시장

 

내가 살던 집 골목에서 나오면 바로 버드나무집이 있었는데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지금에야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해주는 업체가 따로 있어 거의 비슷한 김치나 깍두기를 이집 가도 먹을 수 있고 저집 가서도 먹을 수 있지만, 식간을 이용해서 배추와 무를 길거리에 쌓아놓고 다듬는 광경은 그것만으로도 구경거리였다.

 

아줌마들이 아기 목욕통으로 쓸 만한 커다란 함지를 두세 개 갖다놓고 차고 앉아 커다란 연필 깎듯이 배추를 부엌칼로 툭툭 치면 10센티 전후로 제멋대로 잘린 배추조각이 쌓인다. 그 위에 고춧가루, 마늘, 파, 소금, 미원를 뿌리고 벌겋게 버무리는데 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몇 입 나누어 먹어야 될 정도의 크기로 썩썩 잘랐다.

 

요즘에야 설렁탕집에서 가끔 보는 그런 커다란 깍두기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커다란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거기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원을 넣었는데 그게 무슨 음식이냐고 탓하지 말라. 그 때는 배웠다는 주부들도 거의 모든 음식에 미원을 쳤으니까. 

 

  
그 골목을 지나며 낯익은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쭈그러진 양은냄비에 담긴 닭고기.
ⓒ 이덕은
강원집

 

닭고기 기름 많은 것 아시지. 지금에야 '껍질 빼고 기름 빼고'지만 그런 게 어디 있어. 양은 냄비에 주욱죽 찢어놓은 닭고기와 육수를 붓고 밥 넣고 다대기 한 숟갈 넣고 펄펄 끓여 파 송송 썰은 것 얹고 커다란 깍두기와 국물 넉넉한 배추김치와 마늘을 곁들여 나오면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드-은해지는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 이덕은
강운집

 

그런데 그런 양은 냄비와 닭을 보았으니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제대로 먹으려면 닭곰탕을 시켜야겠지만 동행이 있으니 닭곰탕만으로는 안주가 되지 않는다. 문간 옆 조리대에서는 방금 삶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닭을 커다란 쟁반 위에 놓고 손으로 뜯어 접시에 담고 있는데 닭 한 마리 시키니 양은냄비에 곰탕국물을 곁들여 준다. 닭국물이 달긴 하지만 미원을 약간 가미한 것 같은 맛과 질긴듯하면서도 졸깃한 닭고기 씹는 맛이 옛 맛과 비슷하다. 국물이 식으면 자동적으로 육수를 첨가해서 다시 끓여주니 맘이 흐뭇하다.

 

  
점심시간에 점잖게 혼자서 한 상 차지하고 먹고 싶다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 이덕은
닭곰탕

 

요새야 닭 조리법이 다양해졌지만 튀길 기름조차 귀하던 때에는 그저 푹 삶아 국물도 내고 백숙으로 고기도 뜯어 먹는 것이 제일 간편한 조리법이었을 것이다. 푹 고은 닭을 건져 찬물에 손가락을 식혀가며 다리 비틀어 내어 어른들 몫으로 따로 남겨두고, 닭 날개 뜯어서 '바람 필까봐' 남정네 못 먹게 감추어 두고, 수탉 잡으면 '벼슬하라고' 닭 벼슬은 아들에게 따로 떼어주고, 가슴살은 발라서 국거리로 남겨두고, 뱃속의 미숙란과 똥집은 내가 먹고, 국물에는 대파를 송송 썰어 얹어 내었으니 이만큼 추억과 정감이 배어있는 음식을 보기 쉽지 않으리라.

 

  
닭곰탕. 점심시간만 아니라면 마늘 한 조각 고추장에 찍어가며 먹을텐데...
ⓒ 이덕은
달곰탕

 

국밥이라는 것이 체면 차리고 먹는 음식이 아니다. 할 일도 많은데 장소 구애받지 않고 솥 걸어놓고 끓여 사발에 국 푸고 밥 집어넣어 깍두기 하나 놓고 먹는 음식이니 애시당초 점잖게 격식 차리고 먹을 거면 들여다보지도 말아야할 음식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곱창이나 꼼장어처럼 신분 상승된 음식이 하도 많아 아직도 제 분수를 알고 있는 이런 음식을 보면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워진다.

 

  
약간 질기면서 쫀득한 식감. 무슨 고기인지는 짐작 가지만 질을 따진다면 국밥 자실 자격이 없다.
ⓒ 이덕은
닭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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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에 계림을 다녀온 후 다른 곳 게시판에 썻던 글을 가져와서 올려봅니다.


"무릉도원 가는 길, 리강(離江)"

 

계림의 리강(LI JIANG)은 옛 진나라 진시황의 군수물 수송을 하던 강이었다. 그 경관이 수려하여 몇 억년의 흐름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산마다 동굴이 발견되고 있는데 리강의 4보는 다음과 같다.1)桂花魚(민물고기) 2)물소 3)가마우찌 4)鳳竹

 

중국의 남쪽을 화남(華南)지방이라고 하는데 북쪽에 비해 기후가 따뜻한 것은 물론이고 산수가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3억년 전에는 바다 밑이었는데 지각변동에 의해 치솟은 카스트지형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15천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계림에서 시작하여 양삭까지 60km에 이르는 리강의 물길을 따라서 중국 옛시인 도연명이 말한 '무릉도원'을 찾아 나서는듯한 착각에 젖어보자

- 위 글은 인터넷에서 퍼온 글입니다 -

 

위 설명에 있는 계림이라는 곳을 3월 9일 기차를 타고 갔다가 13일 돌아왔습니다.

중국은 국토가 대단히 큰나라여서 보통 출장을 다닐때는 대부분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는데 이번의 경우는 여행길이라 중국에와서 처음으로 기차 여행을 했습니다.

편도 15시간이 걸리는 긴 기차 여행이라서 침대칸을 이용했는데 대부분 한국인들 중국 여행기에 보면 중국 기차 여행시 침대칸의 종류와 서비스 그리고 가격과 중국인들 습성 뭐 그런것들은 잔뜩 있는데 정작 실내 구조 & 모습을 볼수 있는 사진이 없어서 갈때와 올때 서로 다른 실내 모습을 찍어봤습니다.

 

위에 설명에도 나오지만 우선 기차를 타고 계림에 도착하면 리강(강이름으로 중국어로는 리장이라고 함)이라는 강 하류쪽에서 배가 출발을 (계림은 리강의 강 하류쪽에 위치해 있음) 하여 양삭이라는 곳쪽으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강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는 겁니다.

동절기에는 갈수기라서 강물수위가 낮아지기 때문에 3~4시간 정도 배가 운행이 되며 하절기에는 5~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그만큼 긴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볼수 있습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오는 날씨여서 사진이 선명하지 못합니다.

 

배를 타고 경치 구경을 한 다음날은 자전거 하이킹을 했는데(현지에서 빌려탐...세계각국의 많은 여행자들이 오는 곳으로 자전거 하이킹을 많이 하더군요) 뭣모르고 따라 나섯다가 족히 40Km를 열심히(??) 탓고 돌아오는 길에는 중간 중간 볼거리가 있는 곳을 들러서 놀면서 보면서 그리고 농촌식 식사도 하고 합니다.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계림으로 갈때의 침대칸 입니다.(침대가 3층구조로 2개면이 마주바라보고 있어서 한칸에 6명이 들어갈수 있습니다)

겉에서 보기에 완전 개방형 스타일입니다.

 

계림에서 기차를 타고 심천으로 돌아올때의 침대칸 입니다.(침대가 3층구조로 2개면이 마주바라보고 있어서 한칸에 6명이 들어갈수 있습니다)

약간은 실내구조를 갖추고 있는 스타일이며 좀더 편리한 구조 입니다.

 

돌아올때 기차 침대칸 실내 모습(쓰레기 통도 보이고 중국인들이 즐겨하는 녹차를 마시던가 긴여행시 사발면 같은걸 먹을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받아두는 보온병도 있습니다)

워낙 긴시간 이동이라 기차에서 과일과 음식(도시락), 녹차, 담배 등등 판매를 하더군요.

저는 사발면을 사가지고 가서 기차에서 식사 대용으로 해결했습니다.(중국에서는 농심 라면이 유명한데 완전히 한국맛 그대로)

 

잠들기전에 복도에 나와서 조그만 의자에 앉아 환담을 나누기도 합니다.

 

중국인들 여가 문화는 한국인들 화투처럼 포커 놀이와 마작놀이가 주를 이룹니다.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서 포커를 칩니다 / 남여노소 누구나 즐기는 국민 여가활동(??) / 같이 갔던 일행들입니다.(전부 중국인들로 20여명이 동행함)

아쉽게도 저는 할줄아는 잡기가 전혀 없어서 멀뚱히 구경만.........ㅎㅎㅎㅎ

이번 여행을 통해서 중국인들의 평소 대화나 여가 문화 그리고 그들의 평소 생활 태도등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던 것들을 더욱 많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묵었던 호텔 모습

 

호텔 로비에서 찍은 여행지 지도

 

산중턱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중국인들은 달빛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더군요---웰량산)

달이 뜰때 저 동그란 구멍으로 달빛이 비칠때 가장 아름답다네요.

매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구멍 같은데...순수 자연적인 구멍이랍니다)

 

계림과 양삭이라는 곳은 사방 둘러 보아도 산들이 보이듯 뾰족뽀족한데....일설에 의하면 이런 산이 족히 3만개는 된다고 하는데 사방을 둘러 보아도 대부분  뾰족뽀족한데 이러한 산들 골짜기마다 건물들이 들어서있는 동네입니다.(묵었던 호텔 앞 풍경)


호텔과 가까이 보이는 산들....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런 풍경들을 3~4시간 동안 만날수 있습니다.

 

배에서 바라본 구마산(아홉마리의 말 그림이 그려져 있는 산)...희끗해보이는 바위와 검은 부분들을 잘보면 말 아홉마리를 발견할수 있다고 하네요.

 

 

한국 TV에서도 삶의 체험 현장에 나왔던.....가마우지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

 

 

 

 

배에서 식사를 제공하는데 배후미쪽에 주방을 차려놓고 식사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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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중인 컴퓨터의 HDD 문제로 데이터를 복구헤야 하는 돌발 상황 발생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복구 방법과 순서는 달라질수 있습니다. 또한 이때 사용 하는 복구용 프로그램 툴들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몇가지 경우의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대부분 많이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 하지만 복습의 의미로 정리를 해봅니다

또한 복구의 의미는 문제발생 드라이버에서 원하는 파일을 복구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행위만을 이야기 하렵니다.

따라서 손상된 Windows OS를 원상태로 복구하는 부분은 논외로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 발생즉시 어떠한 경우에도 그 HDD에는 더이상의 뭔가를 저장(Write 작업)을 하지 말고 복구를 해야 성공률이 높습니다.

 

1. 부팅 드라이브인 HDD의 C 드라이버에 문제 발생시

단순한 몇개의 삭제된 파일을 복구 하는 방법은 예외로 하겠습니다.(여러가지 방법과 툴들이 많으므로....)

 

부팅이 되지 않거나 하드드라이버를 읽을 수 없는 경우

1) 하드디스크에서 파티션은 살아있는데 부트섹터가 손상된 경우

2) 하드디스크의 파티션이 깨진 경우

3) 기타는 클러스터가 엉키거나 깨진 경우여서 하드를 읽을 수 없는 상황.......등등

4) 부팅은 되지만 특정 폴더나 파일을 열수 없는 경우 또는 어떤 파일을 복사시 에러가 나거나 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경우

 

이 경우 우선은 무언가의 방법으로 부팅을 하여 문제가 발생한 HDD를 읽을 수 있도록 해야 복구작업을 할수가 있는데...

HDD를 떼어서 다른 컴퓨터에 부착후 복구 작업을 실행 하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노트북 컴퓨터의 경우는 쉽게 HDD를 분리할수가 없으므로 자체적으로 부팅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첫번째 방법 : OS를 재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단, 이경우 단순하게 하드디스크에서 파티션은 살아있는데 부트섹터가 손상된 경우에만 한해서 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데이터들은 Windows 폴더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폴더에 저장이 되기 때문에 OS를 재설치해서 부팅만 가능하다면 데이터는 찾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부트 드라이버인 하드디스크 C 로 부팅할 수 있도록 만드는게 목적이고 또 데이터 찾기가 목적인 재설치 이므로 Windows 재설치시 설치 초기에 뜨는 하드디스크 파티션 또는 Format 설정 여부 옵션에서 하드를 Format하지 말고 같은 하드에 재설치 해야만 이전의 데이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두번째 방법 : Windows PE라는 CD로 부팅을 하는 방법으로, 하드디스크의 OS로 부팅이 아닌 CD에 들어 있는 OS로 부팅을 하는 것으로 이는 별도로 Windows PE라는 CD를 만들어서 사용 하거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CD를 이용 하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는 상기 문제 발생 상황의 1),2),3) 모두에 해당하며 가장 편리하고 쉬운 방법입니다.

 

Windows PE는 인터넷 공간에 잘 찾아보면 쉽게 발견 할수 있습니다.

 

Windows PE에 관한 펌글

Windows PE는 "Window Preinstallation Environment"의 약자로 굳이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윈도우즈 사전설치 환경" 정도가 되겠습니다.
말그대로 윈도우즈를 설치하기전의 사전설치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활을 합니다.
Win9x 시절에는 부팅디스켓이라고 해서 윈도우즈를 설치하기전에
파티션을 나누고 포맷을 한다거나하는 간단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디스켓을 제공했었습니다.
하지만 2000이상으로 넘어오면서 부팅디스켓은 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그 크기도 커져서 조금은 예전에 비해 불편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Windows PE는 이런 부팅디스켓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자 이제 부팅 준비가 되었다면 복구 작업을 해야 하는데 가능하면 별도의 복구용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복구해야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기를 바래야 합니다.

 

복구의 순서는 우선 가능하면 OS에 들어 있는 연장을 잘 활용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상기의 문제 발생에서 파티션이 날아간 경우를 제외 하고는 이 방법을 우선 권합니다.

Windows폴더의 System32 폴더안에 과거 DOS 시절부터 써오던 연장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chkdsk.exe를 이용해봅니다.

DOS창을 열고 chkdsk d: /r/f 를 실행하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d:"는 복구하고자 하는 드라이버)

chkdsk 작업 종료 후 하드 C로 부팅이 되는 지 여부를 확인 하고, chkdsk로 복구한 파일 또는 폴더는 대부분 Hiden 상태로 별도의 폴더 이름이 부여되면서 Root에 저장이 되므로 숨겨진 파일 보기 상태로 확인해야 복구된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하고도 하드를 읽을수 없거나 복구를 하지 못했을 경우 별도의 연장을 사용 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Windows PE로 부팅을 한 경우 대개는 Windows PE CD에 몇몇가지 복구용 연장들을 넣어두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들을 잘 활용하거나 마땅한 연장이 안들어 있는 경우는 Windows PE를 별도로 만들고 그 안에 원하는 연장을 사전에 넣어서 CD로 굽는 방법입니다만 Windows PE CD를 만든다는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게 아니니 가능하면 좋은 Windows PE 물건(??)을 사전에 잘 수배를 해놓으시길......!

 

복구용 연장은 매우 여러 종류들이 있는데 제 경험에 의하면 순수 토종 대한민국 국산의 FinalData Enterprise v2.0.1.1028 가 가장 좋습니다. 좋다는거야 제 주관적인지라 일단 한번 그냥 믿어보셔도 됩니다. ㅎㅎㅎ

그다음으로 EasyRecovery DataRecovery v6.03.04 이것도 쓸만 합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삭제된 파일을 복구해주는것 보다는 파티션이 깨졌거나 특정 드라이버를 읽을수 없는 상황 발생시 망가진 하드에 데이터를 찾아주는 기능을 하는데, 단점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데, 하드 싸이즈에 따라 10시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뭐 중요한 데이터를 살려야 하는데 시간이 문제겠습니까? 복구할 수 있다는게 중요하지요 ㅋㅋㅋ

위에 말한 연장들의 최신 버전이 지금 현재는 어디까지 인지 모르지만 제가 쓰고 있는넘입니다.

 

http://www.finaldata.co.kr  : FinalData

 

http://www.finaldata.co.kr/sub_supports/supports_1.asp

 

http://www.ontrack.com  : EasyRecovery DataRe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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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드디스크의 파티션이 깨졌거나 위에 설명한 chkdsk.exe 로 복구가 불가능할 경우

 

아래 설명은 부트 드라이브인 C를 포함 기타의 하드 드라이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부득이 별도의 복구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되는데 FinalData Enterprise와 EasyRecovery는 문제가 발생한 하드 디스크를 물리적으로 복구해주는 기능이 아니고 망가진 하드에서 섹터와 클러스터를 읽어서 지워진 데이터들을 찾아주고 찾아진 파일들을 또다른 백업하드로 복사가 가능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므로 복구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백업용 하드의 공간이 충분해야 합니다.

 

 그러면 FinalData Enterprise의 예를 설명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파티션이 깨진경우와 실수로 포멧된 하드에 데이터를 복구해주는 성능이 매우 좋은 물건(??)인데 단점은 복구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겁니다.

하드 디스크의 싸이즈에 따라 10시간 또는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실행후 파일메뉴 ==> 열기를 하면 뜨는 창인데, 디스크의 파티션은 살아있지만 읽을 수 없는 경우 또는 하드를 실수로 포멧한 경우 위 그림에서 논리드라이브에 있는 복구를 원하는 드라이브를 클릭후 "선택"을 눌러줍니다.(드라이브는 시스템에 설치된 모두 자동으로 나타남)

파티션이 깨진 경우는 물리드라이브를 열어서 복구를 원하는 드라이브를 선택합니다.


 

 

"선택"을 눌러주면 디스크에서 잃어버린 디렉토리를 검색합니다.


 

 

디렉토리 검색이 완료된 후 뜨는 창에서 "선택"을 눌러주면 클러스터 검색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부터 시간이 걸립니다.

10시간 또는 그이상일 수도 있으므로 걸어두고 취침모드에 들어가면 딱~~~~!


 

 

클러스터 검색이 끝나면 탐색기 처럼 목록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원하는 파일이나 폴더를 선택 후 마우스 오른쪽을 눌러 뜨는 메뉴에서 복사하여 다른 드라이브(백업 드라이브)로 보내면 복구과정이 종료됩니다.

만약, 이 화면을 실수로 복구 완료 이전에 닫았을 경우 처음과정 부터 다시 해야 하므로 10시간 이상을 취침모드(??) 또는 잠수모드에서기다리시면 됩니다. (이 경우 소위말해 열을받아서 뚜껑이 열리는 상태로 가는 겁지요 뭐 ㅎㅎㅎㅎ)

 

복구가 완료되면 망가진 하드를 포멧하든 궈삶아먹든(??) 다음 수순에 들어가면 되겠습니다.

 

위에서도 언급 했지만 복구용 연장들은 매우 여러종류가 있는데 제가 사용해본 바로는 FinalData 가 좋습니다만, 이 또한 주관적인 생각 이므로 여러분들 스스로 취사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프로그램은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영문 버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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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상시 데이터 관리

 

복구를 하기전에 작업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하드디스크의 파티션이 깨졌는지 또는 파티션은 살아 있지만 어떤 이유로든 하드를 읽을 수 없는 상황인지를 파악 해야 하는데...... Windows 의 디스크 관리 창을 열어보면 확인 가능합니다.

 

1) 평소 데이터 손망실을 대비하여 가능하면  C 드라이브에는 중요한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고 Windows OS 가 운영이 되는 공간이므로 바이러스나 사용상의 여러가지 동작에 의해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드라이브이기 때문 입니다.

 

2) 손상될 가능성이 많은 C 드라이브를 통째로 이미지 백업을 받아 보관 하는 것도 나중에 노가다 작업을 줄이는 지름길입니다.

http://cafe.naver.com/powerpro/1174 를 보면 전에 entryno 님이 소개하신 Acronis True Image 가 있습니다.

이미지 백업용 연장도 여러 종류가 있으므로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구비를 하시면 좋습니다.

위 그림에서 드라이브 가장 오른쪽에 "알 수 없는 파티션"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저는 이곳에 Acronis True Image 로 백업 받아 놓은 C 드라이브 이미지가 보관되어 있어서 언제든 원하면 이전 상태로 복원을 합니다.

Acronis True Image 의 기능 중에 Secure Zone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별도의 부팅복구 미디어(CD)를 만들지 않아도 보관되어 있는 이미지를 복원할 수 있어서 좋더군요.

 

3) 가능하면 외장 하드디스크를 준비하여 수시로 백업을 합니다.

제 경우는 USB 외장 하드를 120G 두개, 200G 한개 등 3개를 사용하면서 120G 두개의 데이터는 공히 동일한 상태로 이중으로 백업을 합니다. 만약 120G 하나가 망가지거나 분실시를 대비하고자 함이며 나머지 200G 에는 영화 음악 등등 잡다한 자료들을 보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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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백업관리 및 복구용 Tools 종류들

 

여러 종류들이 있지만 각자 선호도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참고가 될까하여 여러 종류의 목록을 올려 봅니다.

 

1) 백업 복구 관리용

 

Acronis Disk Director Server v10.0.2077
Acronis Disk Director Suite v10.0.2117
Acronis Drive Cleanser v6.0 Build 412
Acronis Migrate Easy v7.0.619
Acronis OS Selector v8.0.917 Retail
Acronis Partition Expert 2003 Build 292
Acronis Power Utilities 2005 v7.0.614
Acronis Privacy Expert Suite v9.0.1429
Acronis Recovery Expert Deluxe Build 132
Acronis SnapDeploy v1.0.0.1307
Acronis True Image Corporate Workstation v8.0.1158 Final
Acronis True Image Corporate Workstation v9.1.3694
Acronis True Image Corporate Workstation v9.1.3718
Acronis True Image Enterprise Server v8.1.0.1143 Final
Acronis True Image Enterprise Server v9.1.3666
Acronis True Image Home v9.0.3677
Acronis True Image Manual
Acronis True Image Server for Linux v9.1.3530
Acronis True Image Server for Windows v9.1 Build 3677
Acronis True Image v9.1 Enterprise Server Universal Restore
Acronis True Image v9.1 Workstation Universal Restore
Backup 2006 Studio v5.1.3.207
BackUP MYPC v4.71 Retail(하드백업)
CompuApps DriveBackup v3.035(하드디스크 백업 복구)
CompuApps DriveWizard Professional v3.13
Deep Freeze Enterprise v6.00.220.1523(재부팅하면 이전상태로 만들어줌)
Deep Freeze Standard v6.0(재부팅하면 이전상태로 만들어줌)
Diskeeper Administrator Edition v10.0.593
Diskeeper Home Edition v10.0.593
Diskeeper Pro Premier Edition v10.0.608
Diskeeper Server Datacenter Edition v9.0.511
Diskeeper Server Enterprise v10.0.593
Diskeeper Server Standard v10.0.593
Driver Cleaner PE v1.4
Driver Genius Professional v6.1.2518
Driver Magician v2.8 retail
East-Tec Eraser 2004 Professional Edition v5.6.0.294(완전삭제)
Eraser v5.3 Build 5363(파일을 완전히 삭제)
ezBackTo SE V2.13 (build 902)
EzBackup 2.12 한글판(하드디스크 백업 복구 FAT32용)
Genie Backup Manager Pro v7.0.138.309
Genie Backup Manager Server v6.0.25.1674
GetDataBack v2.0 for FAT(하드디스크 백업 복구)
GetDataBack v2.0 for NTFS(하드디스크 백업 복구)
GoldenBow VoptXP v7.05
KhimTech ezBackTO™ 2.1 Standard Edition Build 877(디스크 이미지 백업)
McAfee QuickClean v3.00.5000(시용기록 삭제)
Norton Utilities Pack 2006
NTFS DOS v4.01 Professional Edition Retail(부팅디스켓만들기)
NTFS to DOS 3.02 Pro (Full Version)
NTFS to Win98
NTI Backup NOW! v3.0 Deluxe
NTI Drive Backup! v3.0.42
NTregopt(레지스트리 최적화)
O&O Defrag Pro v8.5(조각모음)
O&O Defrag Server v8.5(조각모음)
O&O SafeErase v2.0.554(파일 및 HDD 완전삭제 유틸)
OfficeRecovery 2003 Premium
Ontrack Data Advisor v5.0(디스크검사)
Ontrack Fix-It Utilities 3.0
Ontrack System Suite 2000
Outlook 2000-XP Backup v3.0
Outlook Express Backup v4.0
Paragon 7tools Partition Manager 2005 FullVersion
Paragon Disk Wiper Pro v7.0
Paragon Drive Backup Pro v7.0
Paragon Drive Backup Server v7.0
Paragon Exact Image v7.0.60
Paragon Hard Disk Manager Pro v6.01.847
Paragon Partition Manager Pro v7.00.000.1274
Paragon Partition Manager Pro v7.00.000.1274 Recovery CD
Paragon Partition Manager v7.00.000.1274 Server Edition
PARTIATION & Format Tools
PowerQuest DataKeeper v5.0
PowerQuest DeployCenter v5.51 Retail
PowerQuest Drive Copy v4.0
PowerQuest Drive Image v7.03
PowerQuest PartitionMagic v8.0 1242 Korean
PowerQuest PartitionMagic v8.02
PowerQuest ServerMagic 4.0
PowerQuest V2i Protector v2.03 Desktop Edition
PowerQuest V2i Protector v2.03 Server Edition
PowerQuest Volume Manager v2.03
Raxco DiskState v3.11.1170
Raxco PerfectDisk v7.0.46 Server Edition Retail
Raxco PerfectDisk v7.0.46 Workstation Edition Retail
Roxio GoBack 3.21b 106 Deluxe
Second Copy v7.0.0.163(하드디스크 백업)
Stomp Backup MyPC v5.0
Symantec Norton CleanSweep 2001 v5.0 Win2k, Win 9x&NT
Symantec Norton Ghost v10.0
Symantec Norton PartitionMagic v8.05 Build 1371
Symantec Norton Speed Disk 2001 v5.1 Build 235.for.WINNT2K
Symantec SystemWorks 2005 Final
System Cleaner 2001 V4.1.0.33
System Commander v8.10
System Mechanic Professional v6.0t
Universal Imaging Utility v2.00.0036(HDD Image)
VCOM Fix-It Utilities Professional v6.0.2.3
VCOM SystemSuite Pro v6.0.1.4
Vision Backup Enterprise v10.9.28
Winternals Administrator Pak v5.0
Winternals Defrag Manager v4.0
XPlite And 2000lite Professional v1.3.0246(윈도즈 설정변경)
Xpress BackUp v1.11

 

2) 삭제 또는 손망실된 테이터 복구용

 

Active File Recovery Pro v7.1
Active UNDELETE v5.1.021
DataMagic v2720+ βετα (2006년2월4일)(지운파일되살리기)
DataMedic 2000 Professional v3.0
DataMedic Pro v2.0 WinAll-QUARTEX
DiskRecovery v4.0.1231
EasyRecovery DataRecovery v6.03.04 Retail
EasyRecovery File Repair v6.00.09(파일복구)
EasyRecovery Pro v6.10.07
EasyRecovery_NTFS v4.10
Executive Undelete Home Edition v5.0.111
Executive Undelete Pro v5.0.112
Executive Undelete Server Edition v5.0.114
Fast File Recovery v2.1
Fast File Undelete v2.1
File Scavenger v2.0 WinNT2kXP
FileRecovery Professional v3.2.0.41
FinalData Enterprise
FinalData Enterprise v1.0(98용)
FinalData Enterprise v2.0.1.1028(영문)
FinalData Enterprise v2.0.1.1028(한글)
FinalData NT 2000 v1.0.1(NT 용)
FinalData NT Standard v1.5.0.0827 NT2kXP
FinalData Standard v2.0
FinalRecovery v2.0.1.6
Kernel for FAT Plus NTFS v4.03
O&O DiskRecovery v4.0.1231
O&O Software RescueBox V4
ObjectRescue All In One. MAY 2006
PowerQuest Lost&Found 1.06
Recover My Files v3.9.8.5023
Recover4All Professional v2.11
Revival 3.4 (지운화일되살리기)
R-Studio Emergency v3.5(undelete and data recovery)
R-Studio Network Edition v3.5(undelete and data recovery)
Tiramisu Desktop Bundle v4.1(Recover)
WipeMagic v0.98c(파일영구보안삭제)

광화문 뒷골목을 돌아 늦은 밤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동아방송의 간판이 내려지기 전까지 들을 수 있었던 밤의 귀기울임을.......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있을 지요?

"밤의 플랫폼" 시간대는 정확히 기억이 않나지만.....아마도  10시 50분에서 11시 정각까지 김세원씨의 촉촉이 젖은 듯한 목소리에 실려 울려 퍼지던 명상의 언어들은 어쩌면 따뜻한 인간의  품속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지 싶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기차의 고동소리 그리고 어느 역의  플랫폼을 연상케 하는 언어들로부터 시작되는 Logo 멘트 그날그날의 삶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많은 위안과 희망을 그리고 젊은이의 가슴 가슴 마다에 아름다운 언어를 심어주던 그 시절 그녀의 목소리를 사랑했기에 지금도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 시절의 추억을 읽는다.

그후 몇 년뒤 밤의 플랫폼에서 김세원씨가 낭송해주던 수필 내용이 동명의 책으로 엮여저 나왔고 그 글을 읽으면서 혹시나  편입된 KBS 어느창고에 당시의 녹음테잎이라도 있다면 복사라도 해줄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지금도 그생각은 간절하다.

충무로에는 "필하모니" 종로에는 "르네상스"....가정용  오디오가 귀족들의 신분 과시용으로 취급되던 시절 가난한 서민들의 마음에 안식처를 제공했던 전문 Classic 음악감상실.....어느해 부터인가 가정용 오디오가 흔하게 보급되고 음악 다방들이  자취를 감출 무렵 이 음악 감상실도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중앙일간지 문화면에 얼마간 아쉬움으로 기사화 되고  이제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이 되어버린 지금 충무로나 종로를 지나칠
때면 그때의 감상적이던 추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필하모니 옆에는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연극인 추송웅씨가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빅히트를 쳤던 연극을 공연하는 소극장도 있었는데 그가 고인이 된후 이 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는데 옛날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말한다.
명동과 충무로가 낭만은 사라지고 상업화만 물밀듯이 들어와  삭막하기 그지없다고......관연 그렇구나 하는 것을 이 나이에  나도 옛날과 비교하여 보자면 서글프기도 하다.

학교 다니던 시절 일주일에 나흘은 강의가 끝나고 필하모니로 출근을 하다 시피 했고 앞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있고 의자  배열과 흐릿한 조명은 영화관의 그것과 꼭같았다. 대부분의 토요일은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0시간 가까이 Classic음악과 당시에 귀하던 비디오로 틀어주던  오페라, 발레, 음악연주실황  장면들을 듣고 보면서 그 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했었다.

그러다가 실증이 나면 종로로 가서 르네상스의 한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음악을 듣다가 문을 닫을때쯤 쫒겨나다시피 물러 나오던 그런 낭만도 있었는데....지금 그 자리에는 낯모르는 세계로  변해있어 흔적조차도 찾기 어렵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방송인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전문 Classic 음악 감상실이 새로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언제 한번 일삼아서라도 찾아가 보고 싶다.

혼자서 음악을 즐기던 그때 그시절이 그립다

2000년 9월 초가을 어느날 운전을 하면서 KBS 1FM 김세원의 클래식 방송을 듣다가 사연을 보내면 음악 공연 티켓을 준다는 소리를 듣고 KBS 1FM 웹사이트 게시판에 적었던 나의 음악 생활 내용중 일부.....그리고 당첨 안내글 (응모에 당첨되어서 티켓을 받았는데 예술의 전당 가장 앞자리 제일 좋은 좌석을 받았음 ㅎㅎㅎ)



산골마을 하늘만 빠끔한 산천을 끼고 있는 시골에서 태어났기에  음악의 혜택을 별로 받지 못하고 살다가 사춘기 시절 즈음 우연히  듣게된 지방 방송국의 심야음악 방송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잡음이 섞여있는 좋지 않은 성능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서 이었지요. 그러나 FM 음악 방송이라는 건 먼 남의 나라 이야기 인줄로만 알았다. 당시 지방 방송국에서는 FM 음악 방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부터 FM 음악 방송이 있는데 음질도 좋고 음악도 좋은 게 많다고 하던 말을 듣고는 마냥 도회를 동경했던 적도 있었고 POP 이나 외국음악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다가 어느 해이던가 서울에 올 기회가 있을 때 처음으로 FM 음악 방송이 어떤것인지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서울 살이가 시작되면서 POP 과 Classic을 통해 귀가 트이기 시작했고, 도회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쓸때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게 Classic 음악이었다.

당시 충무로에 있던 음악 감상실 "필하모니"와 그 위층에 있던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님의 작업실과 그 옆건물에 있던 "빨간피터의 고백" 이라는 연극의 영원한 주인공이었던 추송웅님의 공연장이 있었고 종로에는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가 마음을 달래주고 음악의 깊은 심연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며 연극,발레,교향곡,오페라 아리아 또는 첼로,바이얼린,피아노등등의 음률을 가늠하게 만들어도 주었으며 공연 문화에 목마름을 해갈하는 유일한 안식처이었던 추억이 있다.
음악 감상실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7~8시간 많게는 10시간 가까이 가슴을 적시곤 했는데.....지금은 그런 향수가 담겨 있는 그곳이 기억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할 뿐......!

종종 Classic 음악 방송에 엽서 신청 곡을 보내기도 했고 운 좋게도 가끔은 상품을 받는 기회도 있었지만 오디오가 발달하고 통신이  발달 하면서 과거의 엽서에 담은 음악 신청은 멀어지고 말았지만 음악에 대한 관심과 느낌은 변함 없이 세월을 굽이쳐가게 한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일이 바쁘고 문화생활의 여유를 느끼기엔 다소 벅찰 정도의 업무 때문에 밀쳐두고 있지만 때때로 컴퓨터의 MP3를 통해 Classic 음악을 들으며 과거를 회상 하기도 한다.

가끔은 친구와 가족을 위해 멘트를 섞어 인터넷 방송을 하곤 합니다.
더불어 퇴근길에 잠시잠깐 김세원씨의 촉촉이 젖은 듯한 음성을  들으며 음악을 감상하고...지금은 과거가 되어버린 동아방송 "밤의 플랫폼"이라는 프로에서 김세원씨 목소리가 심금을 적시던 기억을 하곤 합니다.

아무튼 이런 기회를 빌어 가슴 절절히 클래식 음악을 사랑했던 그때를 회상함이 아련한 추억을 반추하게 합니다.

---- 중  략 ----

당첨 증명서 ㅋㅋㅋ


2000/09/25 (17:38) from 210.115.222.2' of ...'  Article Number : 103 
  담당자  Access : 22 , Lines : 16 
안너빌스마 첼로 독주회 담첨자 명단 
당신의 밤과음악

안너빌그마 첼로 독주회
9월29일(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후 7시30분

문의:서울(주)빈체로 강은경

축하드립니다.....
개별적으로 통보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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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먹고무신과 운동화~!

국민학교 3학년때인가 싶다.
학교전체 학생수가 1,000여명정도 되었는데 90%가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어쩌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만이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연년생인 누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늘  할머니에게 용돈을 타며 서로많이 가지려고 잘도 다투었다.
당시 충주 지방에서는 담배를  주생산으로 농가가 이루어져  있었고, 우리집도 담배농사가 가장 중요한 주수입원이었다.
여름내내 담배잎을 따서 말리고 겨울동안 손질하여  전매청(지금의 담배인삼공사)에서 수매하는  공판에 내다팔아  주수입원으로 했는데 담배를 팔러가는날  아버지는 여지없이  담배껌(담배까치 처럼 생긴껌)을 사다주시곤했다.

그러던 어느해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던 해였을거다.
그날도 바램은 아버지가 껌을 많이 사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난데 없이 운동화를 사오신거다.
우~~~와.......신나는거~!
다음날 보무도 당당히(??) 등교를 했지만 걱정이 태산 같았다.
교실복도에 신발장이 있어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운동화가 한켤레씩 없어지기 일수였는데, 내 운동화라고 온전할까 하는 걱정때문이었다.

수업시간이 되어도 온통 신경은 신발장이 있는 복도로만  쏠리고 선생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창밖에는 겨울날 찬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고 있었고 내리면서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렇게 온종일을 보내며 마지막 수업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아뿔싸~~~~!   하루종일 쏟은 마음 졸임도 아랑곳 없이 신발장의 내 운동화는 온데간데 없었다.
밖에는 눈마져 내려 미끄럽기 그지 없는데 나는 어쩌란 말인가.
학교건물을 몇바뀌 돌고돌아 혹시라도 내 신발이  있을까...그러나 헛일~  찾는걸 포기하고 다떨어져 헤진 꺼먹고무신이라도 있으면 줏어 신으려 했으나 그날따라 그것마져도 눈에 띄지를 않았다.
집에까지는 비포장 자갈길로 십리는 되고 주머니에 가진 돈도  없어 차를 타고 간다는것은 엄두도 못내고 더더구나 산골짜기 시골이다 보니 어디가서 사정을 이야기 할곳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선생님에게 그 사정이야기를  못했던지. 
숫기도 없고 내성적인 당시의 어린 마음 이었지 싶다.

어쩔 수 없이 한학년 위인  누나네 반으로가서 기웃기웃 "누나 나 신발 잃어 버렸어 " " 아이고 어쩌니? "
궁리에 궁리를 하여 누나와 신발을 교대로 바꿔 신어가며 걸어가기로 했다.

한번은 내가 누나 신발을 신고 누나는 맨발로 걸어서 한50여  미터를 가다가 " 누나 발시려워? "
" 응 "
" 그럼 바꾸자 "
그리고 한번은 누나가 신발을  신고 50여 미터를.....나는  맨발로....눈위에서 맨발로 미끄러지며....넘어지고....발가락은  얼어서 빨갛게 물들어가고....이러기를 두어시간........집으로 돌아와서는 섧도록 울었던 그 생각은 지금도 가슴이 아프도록 생각 난다.

핏줄이라는게 무엇인지.....어리다면 어린 나이의 두 남매....싫다하지 않고 내게 힘이되어준 누나가(불과 한살위인데도) 지금도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다.

살면서 누구에겐가 몇번 내 이런 기억을 반복하여 들추어 보여주었고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누구에겐가 또 이야기 하겠지.
삶의 연이란 다그러려니 하면서....

♣ 슈레이티 비티 압둘라

누구나 첫사랑이라는 기억으로 떠올려 지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각자 나름대로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가슴앓이 같은 모습이 아닐런지.......!
꿈속에서 만났던 아름다움 처럼 기억속에만 존재하지만 평생 떠올릴 수 있는 잠재 의식 속의 그것과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에게 굳이 너의 첫사랑은 어떤 색깔이었더냐 라고 물어본다면, 지금까지 단한번 만나지도 못했고, 단한번의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했고, 단한번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기회 조차 없었던 "슈레이티 비티 압둘라"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머나먼 타국 사람이 그 대상이었다고 한다면 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컴퓨터 통신이 발달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던 그런시절이 아니고 오로지 손으로 쓴 손글씨에 테두리가 빨강파랑으로 둘러쳐진 국제 우편으로만 존재하던 그러한 추억은......

고교 1학년때 우연히 모 해외펜팔 소개소에서 소개받은 사람이 말레이지아 소녀였는데 나이가 동갑내기였다.
당시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 단어를 꿰어맞춰 개발새발(??) 되지도 않는 문장으로 보내는 내 편지에 매우 성실히 답장을 보내오는 그녀였다.
나이 50을 넘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외국인 포함)의 영문 필적을 봐왔지만 아직까지도 그녀처럼 예쁜 손글씨를 쓰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원래가 한글 쓰기 조차도 소문난 악필인 내가 그녀의 필적에  대적할만한 솜씨로 쓸 자신도 없었지만 그래도 당시 내딴에는 이쁜 글씨를 쓰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생각이 난다.

그러던 어느날 편지 봉투에 들어있던 사진을 받아들고 무척이나 신기해 했던 기억은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그리고 또 군대가서 까지도 몇번의 편지가 이어졌는데  어느날인가의 편지에서 그녀는 결혼을 했고 남편은 여행사 직원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후로 군대를 제대하고 한두번 오가던 편지가 끊겨 더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늘 자신을 자기가 좋아하는 "Sue"라는 애칭으로 불러 달라던 그녀였고 동남아시아인 특유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인형처럼 아름답던 모습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말레이지아의 페낭 이포라는 주소만 기억하고 있을뿐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알수가 없다.
그녀의 아버지가 경찰공무원이라 했던 기억이 난다.

살면서 빈번하게 해외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지만 유독 말레이지아엔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혹여 언젠가 말레이지아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찾아보리라 했지만 아직까지도 기회가 없다.

지금도 가능하다면 편지속에만 존재하던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우리의 친구들 처럼 늙은 모습일까 만나보고 싶다...얼마나 변했을지 나는 지금도 그녀가 궁금할 뿐이다....!

2009년 5월 8일 (음력 4월 14일)


나 태어나 51회째 맞이하는 오늘 어버이날 새삼스레이 울 아부지가 너무도 보고싶은날이다.

지난 가을 어느날 울 엄니랑 울 아부지를 만나러 가던날 하루종일 엄니랑 둘이서 국립현충원 경내를 걸으면서 아부지를 그리워했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더욱더 예전의 그 모습이 보고프다.


울 아부지가 이사가신 집을 처음 방문하던 날, 나는 아부지에게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몰라 했다.

나 어릴적 즉 울아부지 젊었을적엔 왜 그리도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으셨던지 그때 나는 몰랐다~~~~~~~~~!

울아부지 마음을.....

아부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는 알수가 없었다.


어릴적 들었던 6.25 전쟁중의 무용담을 그땐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울 아부지가 군대시절에 그런 일을 경험하셨겠거니 했다.

그것이 생사를 넘나드는 그런것이었는지 피부로 와닿지 않았었다.


울 아부지 나이들고 늙어가면서 잔정이 늘어가실때쯤엔 난 먹고사느라 그 잔정을 그리고 애잔한 자식 사랑하는 당신에 마음을 다 헤아려 드릴 여우가 없었다.

단지 바쁘다는 핑게로.....지금 나는 많이 후회를 하고 있다.


지난 10여년 가까운 타국 살이에 울 아부지가 하늘나라로 이사가던 날도 나는 곁에 있어 드리지 못했다.


당신은 큰 아들을 많이 찾으셨다는데도 말이다.


오늘 2009년 5월 8일 어버이날 그리고 우연하게 겹쳐진(양력과 음력 날짜 차이로) 이사가신날 기일을 맞아 어찌 이다지도 보고픈지, 이제야 뼈져리게 아픔으로 와닿는다.


지난해 가을 어느날 처음으로 울 엄니랑 함께 국립현충원으로 아부지를 만나러 가던 그날 그 모습을 여기에 올려본다.


<동작동 국립 현충원 정문>


<울 아부지네 집으로 가는길목에 영면해 계신 영령들>


<울 아부지네 집 이름은 충혼당>


<울 아부지네 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작동 산기슭의 많은 분들>


<걷고 또 걸어서 울 아부지네 집 앞에 도착>


<여보~!  나 왔수....!   여기 당신 큰 아들도 같이 왔다우.  울 아부지가 쉬시는 방 그리고 전우들>


<그 동안 잘 지내셨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당신 곁으로 올때까지 외롭더라도 잘 지내기 바래요.>

울 엄니도 사후엔 저곳 아부지 곁에 모셔질 예정


<울 아부지네 집 충혼당 내부>


<울 엄니 헌화를 위해 제단 앞으로.......>


<울 아부지네 집은 새로 지어진 아주 멋진 경견한 환경이더라>


<아부지~~!   집이 너무 멋지고 깨끗하고 조용해서 무지 좋지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부지 오늘이 어버이날이면서 아부지 이사가신 날이잖아유~!   저녁에 저랑 술한잔 하실래유?

저는 아부지 많이 보고싶은데, 아부지도 글쥬?


아부지~!  그거 몰르지유?

아부지가 즐겨 부르던 18번지 노래가 저의 18번지가 되었단걸.....

가끔 노래 부를 자리가 생기면 꼭 이노랠 부르는데 그럴때마다 지가유 꼭 아부지 생각해유~~!

저 아주 아주 어릴때 비내리던 어느 여름날 작은방 방문을 열어놓고 마당을 내다 보면서

아부지가 이노래 불렀잖아유....

오늘 저랑 술한잔 하면서 같이 함 불러보실래유???



비내리는 호남선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다시못올 그날자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원수와 같더란다



울고 넘는 박달재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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