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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추모 다큐멘터리가 나왔습니다. 48분짜리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이 그것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기획, 제작, 편집하였습니다. 십시일반으로 제작비의 절반을 마련했습니다.
비 교적 짧은 분량의 추모영상이나 UCC(이용자제작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첫 ‘시민제작 다큐멘터리’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의 질과 완성도 역시 매우 뛰어납니다. 내레이션에는 전문 성우들이 참여했습니다.
“안하면 안된다” 보름간 합숙하며 기획
제작을 총괄한 이창희씨(50세)는 현재 ‘참언론을 위한 모임’(참언모)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광고기획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크게 도움 됐다고 합니다. 대본은 작가 김우중씨(28세)가 썼습니다. 전문 구성작가한테 맡기면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김씨가 떠맡았다고 하지만 열정 없이는 엄두도 못낼 일입니다. 다큐멘터리 대본을 집필한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49재 때 상영을 목표로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보름만에 끝내야 했습니다. 그는 짧은 시간에 대본을 완성하기 위해 대통령님 관련한 책을 3일만에 8권을 독파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대본은 전체 수정만 8번을 거쳤습니다.
이
번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숨은 일꾼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창희씨와 함께 영상제작을 제안하고 기획한 신정웅씨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회사원인 그는 퇴근하는 대로 제작실로 달려와 ‘노무현 스토리’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직접 찾아주며 대본 감수를
자처했습니다. 대한문 시민분향소 운영에도 참여했던 그는 "깨어나라! 대한민국!"의 카페지기입니다.
제
작, 편집은 이훈규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 맡았습니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담은
<146-73=스크린쿼터+한미FTA>을 비롯하여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빅파이, 한국영화산업
나눠먹기> <신자유주의의 도발들> <아펙기동대>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독립영화계의 ‘베테랑’입니다.
시
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모금으로 제작비는 현재 절반 정도가 충당됐습니다. 나머지는 외상 거래로 남아 있습니다. 촛불집회에서
밥차 운영과 커피, 녹차, 간식 제공 등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유명한 ‘다인아빠’. 대한문 시민분향소 운영에도 참여했던 그 역시
다큐멘터리 제작에 힘을 보탰습니다.
'다인아빠의 가장 아름다운 나라' 카페를 통해 모은 성금 덕분에 초기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한겨레를 사랑하는 모임' '참언론을 위한 모임' '깨어나라! 대한민국!' 등의 시민모임이 이번 영상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영어, 중국어 버전 제작.. 대통령님 뜻 세계로 알릴 터
이들은 대한문 시민분향소를 운영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획했습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안하면 안된다”는 의지로 서로를 북돋우며 아예 보름 정도 합숙을 했고,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무
엇이 이들을 이토록 강해지도록 했을까? 이창희씨는 “대통령님이 우리에게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몸을 던지신 것이라면
앞으로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많은 시민들과 이를 공유할 수 있게 영상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는 “대통령님 서거를 단순한 자살로 보지 않고 간접 살인, 포괄적 살인으로 봤다”며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가’를 규명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애초 제목은 <누가 왜 노무현을 죽였는가>였습니다.
대 통령님이 어떤 목표와 열정을 갖고,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시려 했는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좀더 쉽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제작팀. 이를 위해 한국어 버전말고도 영어, 중국어로 더빙하여 유투브 등을 통해 세계로 알릴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더 필요할 텐데, 마련할 방안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되돌아온 답변입니다.
“지
금까지 우리는 모든 걸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촛불집회도, 분향소도 우리 힘으로 운영했어요. 일부에서 걱정도 했지만 힘을 모으니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지잖습니까? 영어, 중국어 버전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식에 '사람사는 세상' 만들기를 열망하는
시민들에게 전달된다면, 우리 뜻에 동참할 시민들이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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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별로 없다. 너댓 차례 만났던 것이 전부였다. 내가 그를 처음 눈여겨보기 시작했던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5공 청문회 때였다. 그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의분에 가득찬 정의로운 사람일 뿐 아니라, 매우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의 낮은 수준에 절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등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우와, 웬일이니, 올바르고 똑똑한 국회의원도 있네"라고 생각했다. 그가 증인들을 몰아붙이는 솜씨는 대단했다. 명쾌한 단문의 질문들. 논리적으로 꼼짝 못하도록 치밀한 틀을 짜는 기술. "대단하다. 저 사람 누구지?"
정치인 노무현은 그렇게 처음으로 나에게 "올바르고 똑똑한 국회의원"으로 각인되었다. 그것은 그를 처음으로 직접 만났던 자리에서도 나에게 남겨진 인상이었다. 그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월간 <Win>에서 차세대 주자들을 시리즈로 인터뷰하는 기획이 있었는데, 그때 노무현이 제1 주자로 선택되었고, 나는 그 인터뷰 자리에 패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었다. 그는 교수들이 던지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상당히 완비된 매뉴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나 절대 운명 앞에 홀로 섰던 그, 노무현
그를 두 번째로 만났던 것은 부산 어디에선가였던 것 같다. 지나가는 길에 그의 모습을 보았고, 그냥 수인사 정도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 번째 만남은 상지대학교에서였다. 그때 우리 학교에서는 국민의 정부 정책 토론회가 열렸었는데, 당시의 기라성같은 정치인들 여러 명이 참석했었다. 교수 한 사람이 발제를 하고, 그 발제에 대해 정치인들이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노무현은 열 댓 페이지에 해당하는 교수의 긴 발제문을 단 몇 줄로 명쾌하게 요약한 뒤에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런 저런 수사를 늘어놓으며 다른 정치인들을 경계하면서, 자기를 알리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그는 군더더기 없이 바로 핵심으로 들어갔다. 역시 "무섭게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쿨하고 페어하다는 느낌. "음, 깔끔한 실무형이군. 게임 룰을 아는 사람이야. 정치적 췌사가 없다. 무지 마음에 드네. 저 사람 대통령 되면 좋겠다. 그런데 민주당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그는 나에게 합리성의 아이콘 같은 것이 되었다. 그는 기적처럼 민주당 경선을 통과했다. 2002년에 나는 파리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파리 교외 낭테르의 한 조그만 방에 앉아서 인터넷을 껴안고 살았다. 프랑스의 인터넷은 느리고 자주 끊겼다. 게다가 시간 차 때문에 밤낮이 뒤집힌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광주 경선 때는 혼자서 소리치고 악악대고 펄쩍펄쩍 뛰고 난리를 쳤다. 정말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9월쯤 귀국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한심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그를 흔들어대면서, 정몽준에게 추파를 던졌다. 그리고 이어진 아슬아슬한 후보단일화 드라마. 노무현이 정몽준의 무리한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노무현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그대로 다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던져야 할 때, 과감하게 던진다. 그러는 그의 태도를 두고 사람들은 승부사적 기질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진정한 '실존적 투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떤 순간, 운명 앞에 단독자로 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그 뒤에는 절대의 운명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그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한 정치인은 없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그는 꼼수를 쓴 적이 없다. 꼼수 외에는 아무것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의 행위는 최고수의 고단수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운명 앞에 한 번도 벌거벗고 서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유불리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자들은 노무현이 내리는 결정 앞에서 판판이 나가 떨어진다. 탄핵 사태 때에도 탄핵을 시도했던 자들은 민심의 역풍을 맞자, 노무현이 탄핵을 유도했다고 법석을 떨어댔다. 노무현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했을 뿐이다. 거기에는 아무 꼼수도 없다. 그는 승리하기 위해서 잔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잔머리를 쓰는 자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실존적 투기' 앞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개혁당 창당식 때 그를 보았다. 내 바로 옆 자리에 그가 앉게 되었는데, 나는 카메라가 따라붙는 것이 싫어서, 딴 사람을 그 자리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옆 옆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노무현이 문성근의 열정적인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그 유명한 장면에서 카메라에 잡힐 뻔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임명장 수여식 때, 그리고 그의 임기 말에 안동에서 열린 균형위 세미나 때 그를 보았다. 그날 머리가 엉망이어서 베레모를 쓰고 갔는데, 악수할 때 방싯 웃으며 "어, 모자를 쓰셨군요. 잘 어울리네요"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따뜻한 손,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그 뒤로 엷게 비치는 어떤 깊은 피로감과 쓸쓸함. 그것이 그를 만난 마지막이었다. 나는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5년 내내 기득권 세력에게 물어뜯기고,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서조차 왕따당했던 대통령. 대통령이면서도 세상의 모든 모욕을 다 겪어야 했던 사람. 그렇게 얻어맞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았던 사람. 미련곰탱이 원칙주의자. 그러나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이 희귀한 정치인은 나에게 누구였을까?
그가 봉하마을로 내려간 뒤, 그를 보겠다고 달려가는 사람들 곁에 있는 그를 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불려 나오면서도 늘 웃었다. 어이구, 이 양반 대통령 그만둔 게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 이른 바 '노간지'로 불리는 사진들을 꼬박꼬박 챙겨보면서 나는 행복했다. 그가 더 이상 사악한 혓바닥으로 무장한 저 잔인한 기득권 세력과 조중동에게 시달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가 자연 안에서 그 특유의 어린아이같은 천진함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안심했다. 때로는 그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대통령이 너무나 피곤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어지간히 빠지면 한 번 찾아가리라, 했었는데… 그랬었는데….
그가 간 뒤, 내장에서까지 핏물이 쏟아져 나오다
그가 가고 난 뒤, 나는 프랑스인들이 "내장적 슬픔"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온몸이 울다 못해서, 내장에서까지 핏물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추도사를 써달라고 했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거절했다. 아마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추도문 같은 것은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죽음이 객관화되지 않는다. 그날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진 것은 노무현이 아니다. 그날 죽은 것은 나다. 내가 죽은 것이다. 나는 그와 함께 모욕당하고, 그와 함께 절망하고, 그와 함께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나는 길게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잘랐다. 무엇인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곤 이상한 느낌이 엄습했다. 매일처럼 모욕당하는 느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내 얼굴 위로 역하고 끈적거리는 침 같은 것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이른 바 박연차 게이트가 보도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점점 더 심해졌다. 아침마다 얼굴에 떨어져 있는 그 역한 침은 점점더 끈적거리는 것으로 변했다. 나중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 가슴이 벌벌 떨리고, 숨이 가빠졌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대체 이 사람을 어디까지 모욕해야 저들의 잔인한 욕망이 가라앉을까. 나는 울부짖었다. "주여, 대체 언제까지니이까?"
나는 한순간도 노무현 대통령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 같은 사람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기질의 소유자들은 굉장히 높은 자존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들이 설정한 존재의 절대 기준을 충족시키기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루하게 거짓말을 하고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한다. 만일 문제가 자신 하나에 관계된 것이었다면, 노무현은 끝까지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그가 살아 있는 한, 저 잔인한 자들이 온갖 방법으로 그와 그의 주변에 가하는 모욕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법적으로 승리하더라도, 그들이 그의 피를 다 빨아먹은 뒤에, 그에게 남겨질 것은 남루한 육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추악한 송곳니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들에게서 노무현이라는 먹잇감을 빼앗아야 했다. 그의 죽음의 외적 형식은 자결이지만, 그 내용은 타살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과 언론이 그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고 피를 빨아먹었다. 그에게는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몸을 던질 힘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바위 위로 올라갔다.
노무현 존재 자체가 악몽이었던, 뻔뻔한 에일리언들
모든 언론이 와글와글 그를 모욕하고 있던 무렵 어느 날 밤에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파리한 얼굴을 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힘없이 입을 달싹이며 뭐라고 말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렸다. "노무현이 죽었대." 검은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불었다. 그리고 나뭇잎들이 갑자기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차가운 냉기가 훅, 하고 느껴졌다. 나는 꿈의 냉기에 놀라 오밤중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 앞의 어둠이 스멀거리며 내 몸을 에워쌌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양반이 이 사악한 자들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일은 그 방법 밖에 없는 걸까?" 그리곤 그 꿈을 잊어 버렸었다. 그런데 2009년 5월 23일 새벽에….
그런데 과연 노무현은 대통령이었던가? 오세훈 서울 시장을 위시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하러 국회의사당에 들어갔을 때, 오만한 자세로 삐딱하게 앉아서 일어서지조차 않았다. 그들은 있는대로 건방진 포즈를 취하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경멸감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에게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는 나라는 천지 간에 대한민국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그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소위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온갖 천박한 욕지거리로 그를 모욕했다. 그들은 노무현을 증오하고 모욕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이유인 것처럼 굴었다. 그 모욕은 노무현 대통령의 5년 임기 내내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 컬럼 등에서 노무현을 옹호하던 나도 나중에는 지쳐 빠졌다. 상대방은 뻔뻔함을 무기로 가지는 에일리언들이다.
그들에게는 논리도 철학도 영혼도 없다. 단지 자신에게 유리하기만 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바꾸고,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운다. 불리하면 "빨갱이"라고 악을 쓰면 그만이다. 논리도, 양식(良識)에의 호소도 아무 소용도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진리는 '나의 이익'이다. 그것을 건드리는 자는 모두 잔인하게 밟아 죽인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단지 처치해야 할 적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이를 드러내고 5년 내내 노무현을 물어뜯었고, 그리고 퇴임 후에도 물어뜯어 결국은 죽여 버렸다. 도덕적인 노무현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부도덕의 굴레를 뒤집어 씌워 죽여야 했다. 가능한 한 그를 더러운 존재로 만들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까불었다"고 하는, 대한민국 보수 언론
역사에 길이 남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진홍의 칼럼은, 노무현을 더럽히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발작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박연차가) 돈이 아니라 똥을 지천으로 뿌리고 다녔다(...) 그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쳐바르고 온몸 전체에 뒤집어쓴 사람들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그 부인이었으며 그 아들이었다." - <중앙일보> 2009년 4월 11일자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똥"이라는 말이 신문 칼럼에 등장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우아한 포즈를 취하기를 즐기는 기득권 지식인이 이렇게 참지 못하고 격하고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모든 언어는 무의식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정진홍을 위시한 기득권 세력은 그 동안 깨끗한 노무현 때문에 자기가 "똥묻은 자"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정진홍 등은 원한에 사로잡혀 "똥"을 노무현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진홍은 이 칼럼으로 인해서 영원히 "똥을 뒤집어쓴" 채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에게 가해진 집단 린치의 원인은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조선일보> 김대중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웅변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어쩌면 노씨와 그의 사람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정도는 노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조선일보 2009년 3월 30일 자)"라고 쓴다.
안 까불었으면, 즉, 그들에게 투항하고 고분고분 말을 들으며 그들의 곳간을 채워주는 머슴 노릇이나 했으면 그렇게 심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까불었다. 즉 주제넘게 기득권의 이익을 위협하면서 공동체의 선을 위해 사회를 재편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나라 기득권 세력의 최고 브레인 중 한 사람인 <조선일보> 김씨는 "까불었다"는 지극히 상스러운 표현을 쓰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이 표현의 천박함과 노골적인 계급성을 눈여겨 보라. 세계 어느 나라 칼럼에서 이런 표현이 사용되겠는가? 가히 역사적인 사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본질을 알려주고 싶어서 몸이 달아 있다.
"알았어? 네가 비리를 저질렀는지 안 저질렀는지 그건 사실 문제가 안돼. 그건 문제의 핵심이 아냐. 우리가 이명박이 저지른 비리를 문제삼던가? 우리 편은 얼마든지 비리를 저질러도 돼. 그건 우리 이익을 해치지 않거든. 본질적인 것은 네가 까불었다는 것, 즉, 우리의 기득권에 반기를 들었다는 거야. 너는 지금 그래서 고통당하고 있는 거야."
김씨는 그렇게 전직 대통령을 '노씨'라는 경멸적 호칭으로 부르면서, 노무현이 당하고 있는 모욕의 본질을 알려줌과 동시에 자신이 힘을 가진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라는 것을 과시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김씨 등의 잔인한 가학적 욕망은 채워질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은 그들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아직도 가슴을 후벼 파는 그의 마지막 한 마디
노무현에게 가해지는 집단 린치를 보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 중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했다. 노무현은 일국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영주들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광장으로 끌려나와 바퀴형에 처해진다. 그의 사지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바퀴에 묶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몸에 침을 한 번씩 찍찍 뱉으며 지나간다.
검찰이 그의 피의사실이라고 줄줄이 흘렸던 것들 중에서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팩트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주님들의 행동대원인 검찰이 말하는 그대로 노무현의 죄를 복창했다. 검찰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이며, 로열 패밀리의 중심 세력인 그들 조직의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던 노무현에게 당했던 창피를 복수하려는 듯, 최소한의 증거도 확보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질질 흘리며 잔인한 여론재판을 수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던 날, 이층 창문에서 그를 내려다 보면서 활짝 웃고 있던 이인규, 홍만표 검사의 얼굴은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웃고 있는 잔인한 얼굴들을 형틀에 묶인 노무현의 고난과 함께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 길을 나서는 노무현을 따라간다. 새벽 공기는 맑고 차다. 그는 경호원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묻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한다. 이 말들이 발설된 시간대와 정황은 나중에 경호원의 초기 진술과는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우리는 그렇게 그를 모른 척 비껴 지나갔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다가가 그의 진실을 믿는다고, 사악한 혓바닥들의 거짓에 굴하지 말라고, 우리가 지켜 드리겠다고 말해야 했다. 우리는 그를 혼자 두고 "지나갔다" 그런데, 보라.
노무현은 "저기 지나가지" 않고, 그의 몸을 던져 "여기 온다". 영원히 온다.
그는 부엉이 바위 아래로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마음속, 깊은 영혼 속으로 뛰어내렸다. 우리는 부엉이 바위 아래로 달려가 울며 떨어지는 그의 몸을 받는다. 그는 상징이 되어 날아간다.
오, 세계는 얼마나 징조로 가득차 있는가. 그가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 옆에는 뱀 바위가,
그리고 그 옆에는 사자 바위가 있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새 부엉이는 어둠을 헤치며 날아오른다. 노무현은 시대의 마지막
어둠을 찢고 뱀의 혓바닥과 싸웠다. 그 옆에 사자가 버티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에 통곡했던 수백만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봉하
마을로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실로 눈부시게 피어나는 이성의 전조가 될 것이다.
상징 전통 안에서 사자는 대표적인 태양 동물이다. 그것은 주체의 눈부신 각성과 당당한 독립을 의미하는 힘찬 상징이다. 우리의 통곡은 노무현이 몸을 찢으며 맞서 싸웠던 저 밤의 뱀들의 저주를 이겨내는 빛의 포효가 될 것이다. 사자는 어느 날, 뱀을 제압하고 승리의 함성을 지를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몸서리쳐집니다. 구멍가게에 앉아 손녀에게 쭈쭈바를 사주시면서, 행여 손녀의 손이 차가울까 봐 휴지로 돌돌 말아서 건네주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착한 사람을, 그 선한 미소와 어린아이같은 천진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습니다.
당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우리가 이제야 당신의 찢어진 몸을 쓰다듬고, 당신의 부서진 뼈를 맞추어 드립니다. 우리가 내장까지 떨리는 통곡으로 당신의 피를 씻어 드립니다. 다시는 몸을 받지 마소서. 다시는 사악한 자들이 당신을 물어뜯지 못하도록 윤회의 사슬 안으로 돌아오지 마소서.
굿바이 마이 캡틴, 나의 소중한 친구여. 당신과 한 시대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혼 안에 영원히 오는 분으로 살아 계십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은 나의 캡틴, 평안하소서, 옴 샨티 샨티.' |
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만 부재중입니다. 그 이후, 현장 방문 확인 (14) | 2009.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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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시민제작 다큐멘터리]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 (2) | 2009.07.17 |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0) | 2009.07.10 |
[펌글] 노무현 대통령 '아주 작은 비석' 남북 팔도 돌·모래 깔린다 (0) | 2009.07.07 |
노무현 대통령 미공개 동영상 공개 그리고 퍼스트레이디의 헤진 옷자락 (6) | 2009.07.06 |
[펌글] [시민제작 다큐멘터리]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 (2) | 2009.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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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이제는 아프지 않은 나의 캡틴, 평안하소서 (2) | 2009.07.13 |
[펌글] 노무현 대통령 '아주 작은 비석' 남북 팔도 돌·모래 깔린다 (0) | 2009.07.07 |
노무현 대통령 미공개 동영상 공개 그리고 퍼스트레이디의 헤진 옷자락 (6) | 2009.07.06 |
인물연구 노무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0) | 2009.07.06 |
“비석은 검이불루하게, 안장시설은 화이불치하게”
o 전국 8도 각지에서 기증된 다양한 석재로 묘역 조성
o ‘참여정부 5년의 기록’ 및 추모영상 DVD 부장품으로
o 묘표는 지관스님 글씨로, 어록은 신영복 교수 글씨로
유홍준 비석건립위원장은 7월 7일 오후2시 봉하마을 회관에서 기자회견(아래 사진)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님 안장과 묘역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밝혔습니다.
유
위원장은 비석과 안장시설의 설치에 대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로 그 미학을 대신했습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시조 온조왕 15년
춘정월(春正月)에 새로 궁실을 지었는데 이같이 표현했다고 합니다.
제작자와 지역단체, 안장시설 재료 산지기증
먼저 대통령님 묘역과 비석에는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국정철학에 맞추어 전국 8도의 물산이 고루 사용됩니다. 이들은 모두 제작자나 지역 자치단체, 시민단체 등의 산지 기증으로 제작됩니다.
안
장시설의 경우 석함은 충남 보령 남포오석(삼부석재 남기택), 연꽃석함은 전북 익산 황등석(금강조각 윤태중), 유골이 들어가는
백자합은 경기 성남 백자가마(도예가 박영숙), 방습 참숯은 강원 횡성, 모래는 경남 김해 화포천에서 채취된 것입니다.
묘역을 중심으로 바닥에 설치할 두께 12cm 정도의 넓적한 박석도 제주도 현무암(제주4.3유족회), 강화도 박석(강화군), 남해 청석(남해군), 황해도 해주 쑥돌(창림통상 정소진) 등 전국 각지의 돌이 사용됩니다.
대통령님 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예법에 따르고, 국가원수의 묘소로써 예를 갖춰 진행됩니다. 유골 봉안은 부부 합장묘의 예에 따라 공간을 확보하고 개폐구조를 갖추기로 했습니다.
유
골을 모실 백자합(가장 오른쪽/직경 30cm, 높이 25cm)은 연꽃 모양의 석합(가운데/직영 50cm, 높이 50cm)에 담아
그 석합을 대리석 석함(가로 124cm, 세로 68cm, 높이 79cm)에 봉안하고 지하에 매장하는 방식으로 안장합니다.
석함에는 부장물로 참여정부 국정홍보처가 제작한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라는 5부작 다큐멘터리 DVD와 대통령님 일대기와 추모영상을 담은 DVD가 들어갑니다. 석함 덮개돌에는 한자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2009’라고 새깁니다. 이 글씨는 묘표를 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썼습니다.
이
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대통령님 어록이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글씨로 새겨진
강판을 덮습니다. 그 위에 충남 부여의 석산에서 발굴한 두께 40cm, 가로 세로 각각 2m 정도의 화강암 재질 너락바위 형태
비석을 봉분처럼 올리게 됩니다. 이 비석에는 앞서 발표한 대로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겨졌습니다.
묘
역에서 봉화산 사자바위 방면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는 길이 30m, 높이 3m, 두께 30cm의 철골 강판을 세워 ‘벽’
역할을 하도록 하고, 주변 경관과 모역을 분할하였습니다. 또 조명등이 설치된 9m 높이의 국기게양대를 설치하여 묘역을 비출
예정입니다.
유홍준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은 미적분의 해법”
다음은 유홍준 비석건립위원장의 모두 발언입니다.
1. 진작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49재 전에 일을 마쳐야 해서 이제야 마련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유족과 전례위원, 그리고 기자분들에게 그간의 경과와 오늘 이후 지하에 안장될 모든 시설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3. 노무현 前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을 당부하셨고, 영부인께서 그 건립을 제게 위임하셨을 때 사람들은 “아주 작은 1차 방정식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그깟 일에 무슨 위원회냐“고 꾸짖기도 하였습니다.
4. 그러나 화장된 유골을 산골하지 않고 매장을 하되 봉분은 쓰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비석건립은 안장 시설과 함께 이뤄져야 하고, 대통령님 유언의 “아주 작은 비석”이란 검소하게 하라는 뜻인데 전직 국가원수의 묘역이고 비석이니 누추해 보여서는 안 되고 예기치 못한 조문 열기에서 보여준 국민의 뜻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니, 이는 3차 방정식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전례(前例)가 하나도 없지만 예법(禮法)에서 어긋나지 않고 또, 전통(伝統)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나아가 옛날보다 더 잘 해야 하는 미적분의 문제였습니다.
※ 미적분의 해법 : 밥 먹으면서도 고민... 고민...
① 기본은 비석이다. 어찌됐든 돌이다.
②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는다면 = 고인돌(支石墓)
③ 아주 작아야 한다. 북방식(北方式)이 아닌 남방식(南方式)
④ 그렇다면 창녕 유리 고인돌(메주덩이)가 아닌 고창 상갑리 고인돌(너럭바위)이다.
⑤ 그래서 짜장면 먹다가 떠올라 이렇게 스케치했다.
※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승효상씨 이로재건축연구소로 뛰어갔더니 그는 다음 화면처럼 구상하고 있었다. 상수(上手)는 달랐다. 나는 고인돌 옆에 아주 작은 비석을 생각했으나 승효상씨는 덮개돌이 바로 비석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했다.
<제1부> 약속, 시대의 책임 (정치)
<제2부> 구시대의 막내에서 새시대의 맏이로 (경제, 사회)
<제3부> 미래는 꿈으로 만들어진다 (통일, 외교, 안보)
<제4부> [내가 만난 노무현] “그와 함께 한 시대를 건넜다”
<제5부>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 “시대는 단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노무현 묘역에 남북 팔도 돌·모래 깔린다 |
'아주작은비석 건립위',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묘역 설명 |
제 16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과 비석 제작을 맡았던 유홍준 아주작은비석 건립위 위원장(전 문화재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대해 이같은 '미학'을 부여했다. 그는 "지상의 비석은 검이불루하게, 지하의 안장시설은 화이불치하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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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묘역과 비석에는 남·북 팔도의 대표적인 돌과 모래가 사용되었다. 건립위는 "노 대통령의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국정철학에 맞추어 묘역 조성과 안장 시설에 전국의 물산이 고루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안 장시설부터 보면, 석함은 충남 보령 남포오석(남부석재 남기택 기증), 연꽃석합은 전북 익산 황등석(금강조각 윤대중 기증), 유골이 들어가는 백자합은 경기 성남 백자가마(박영숙 기증), 습기 방지를 위해 들어가는 참숯은 강원도 횡성, 모래는 경상도 화포천에서 갖고 온 것이다.
바닥에 놓인 박석도 전국 각지에서 왔다. 제주 현무암(4.3유족회 기증)과 강화도 박석(강화군 기증), 남해 청석(남해군 기증), 북한 황해도 해주 쑥돌(애석)이 사용되었다. 해주 쑥돌은 창림통상 정소진 대표가 중국 상하이를 통해 수입한 돌이다.
이제 생산되지 않는 돌도 많은데, 금강조각 윤대중 대표는 15년 전 작품하기 위해 소장하고 있던 돌을 내놓았고, 남해군도 보관하고 있던 돌을 내놓았다. 유홍준 위원장은 "전국 8도의 돌과 모래 등 물산들이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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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위원장 "밥 먹으면서도 고민했다"
건 립위는 7일 오후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의 묘역 조성과 안장방식 등에 대해 설명했다. 봉하마을회관에서 열린 설명회에는 유홍준 위원장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건축가 승효상씨 등이 참석했다. 유 위원장은 봉화산 사자바위 기슭 아래에 있는 묘역으로 이동해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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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위원장은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안장될 모든 시설물을 공개한다"면서 "노 전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을 권양숙 여사께서 제게 위임했을 때, 사람들은 '아주 작은 1차 방정식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그깐 일에 무슨 위원회냐고 꾸짖기도 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화장된 유골을 산골하지 않고 매장하되 봉분을 쓰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비석 건립은 안장시설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유언의 '아주 작은'이란 검소하게 하라는 뜻인데, 전직 국가원수의 묘역이고 비석이니 누추해 보여서는 안되고, 예기치 못한 조문 열기에서 보여준 국민의 뜻은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크니 이는 3차방정식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이전 전례가 하나도 없지만, 예법에서 어긋나지 않고 또 전통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나아가 옛날보다 잘해야 하는 미적분 문제"라며 "미적분의 해법을 찾기 위해 밥 먹으면서도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 는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는다면 고인돌이라 생각했고, 아주 작아야 한다면 북방식이 아니라 남방식이어야 하고, 그렇다면 메주덩이 모양인 창녕 유리 고인돌이 아닌 너럭바위 모양의 고창 상갑리 고인돌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자장면 먹다가 떠올라 스케치했다"고 덧붙였다.
비문에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쓴 것에 대해, 그는 "약력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의 비석에도 이력을 붙이지 않았던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 는 "바로셀로나 무명용사의 비와 파르테논신전, 우리나라 근정전 등 세계 40여 곳의 시설물을 조사해 참고했다"고 밝혔다. 묘역 주변 바닥에 놓인 박석 15개에 추모객들이 남긴 글을 새겨 놓았으며, 안도현 시인과 공선옥 작가가 쓴 '헌시'의 일부도 새겨 놓았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건립위원인 황지우 시인한테 애초에 비문을 부탁하려고 하니, 그는 절대 비문을 우리가 쓰면 안 된다고 했다"면서 "비문을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추모 기간에 나온 일반 국민들이 쓴 글보다는 못할 것이기에 추모의 글을 박석에 새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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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 예법 따라
노 대통령의 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 예법에 따른다. 또 국가원수 묘소로서 예를 갖추었으며, 건립위는 박명근 동국대 강사와 윤용이 명지대 교수한테 자문을 받기도 했다.
유골 봉안은 부부 합장묘의 예에 따라 공간을 확보해 놓았으며, 열고 닫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앞으로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별세하면 노 대통령 유골함 옆에 같이 안장하게 된다.
덮 개돌에는 한자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1946~2009)'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이 글씨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쓴 것이다. 유골함이 들어갈 연꽃석합은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디자인하고, 금강조각 윤태중 대표가 제작했다.
유골이 들어갈 백자합은 도예가 박영숙씨가 제작했다. 박영숙씨는 청와대 외빈 접대용 그릇을 만들기도 한 도예가다. 백자 지석에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2009'이라고 새겨넣었다.
묘 역에는 9m 높이의 국기게양대가 설치되는데, 그 속에 잘 보이지 않게 밤에도 불빛을 비추는 조명장치가 들어간다. 노 대통령의 유골을 안장할 때 부장품도 들어가는데, 건립위는 유족과 논의해 2개의 DVD를 넣기로 했다. 부장품으로 들어가는 DVD에는 참여정부 5년의 기록과 추모자료 영상이 담겨있다.
유홍준 위원장은 "세계 건축사에 내놓아도 자신있다는 생각으로 했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국가의 묘역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만든 묘역이 앞으로 국가사적이 되고 세계 건축가들이 와서 둘러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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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이제는 아프지 않은 나의 캡틴, 평안하소서 (2) | 2009.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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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0) | 2009.07.10 |
노무현 대통령 미공개 동영상 공개 그리고 퍼스트레이디의 헤진 옷자락 (6) | 2009.07.06 |
인물연구 노무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0) | 2009.07.06 |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사진모음 그리고 바탕화면 그림 (6) | 2009.06.17 |
이 사진과 글은 아고라에서 퍼온 것입니다. 이 한장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나네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시킨 참모 생각에 눈물짓고, 자전거에 손녀 태우고 들판 달리며 함박웃음 짓고, 우는 아이, 불편한 아이 어르고 달래고 놀아주고… |
영결식 전 미공개 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이제껏 공개되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님 동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이번에 공개하는 동영상은 모두 지난해 촬영한 것입니다.
퇴임 직전 청와대 관저에서 안희정씨 출판기념회에 보낼 축하 영상메시지를 촬영하는 장면을 빼곤 모두 봉하마을에서의 생전 모습입니다.
전직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친근하고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인간적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0) | 2009.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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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노무현 대통령 '아주 작은 비석' 남북 팔도 돌·모래 깔린다 (0) | 2009.07.07 |
인물연구 노무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0) | 2009.07.06 |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사진모음 그리고 바탕화면 그림 (6) | 2009.06.17 |
[펌글] “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 되고 싶다”던 키작은 친구 (2) | 2009.06.17 |
»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는 1994년 여름 열흘 동안 원창희 회장 등 친구 부부들과 함께 캐나다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이외 첫 외국여행이었으며, 이때 골프도 처음 해봤다. 양 옆으로 노 전 대통령 부부, 가운데 원 회장 부부가 서있다.
인물연구 노무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0) | 2009.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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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사진모음 그리고 바탕화면 그림 (6) | 2009.06.17 |
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추가했다는 공지글이 뜨다. (2) | 2009.06.17 |
노무현 대통령 사진 누락에 대한 현충원 조치 확인 (2) | 2009.06.16 |
[펌글] 문제의 현충원 사진과 영상입니다. (0) | 2009.06.16 |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사진모음 그리고 바탕화면 그림 (6) | 2009.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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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 되고 싶다”던 키작은 친구 (2) | 2009.06.17 |
노무현 대통령 사진 누락에 대한 현충원 조치 확인 (2) | 2009.06.16 |
[펌글] 문제의 현충원 사진과 영상입니다. (0) | 2009.06.16 |
현충원,盧 전 대통령 사진만 누락? (검색 및 신문사 사이트 메인에 뜨다) (0) | 2009.06.15 |
[펌글] “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 되고 싶다”던 키작은 친구 (2) | 2009.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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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추가했다는 공지글이 뜨다. (2) | 2009.06.17 |
[펌글] 문제의 현충원 사진과 영상입니다. (0) | 2009.06.16 |
현충원,盧 전 대통령 사진만 누락? (검색 및 신문사 사이트 메인에 뜨다) (0) | 2009.06.15 |
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만 부재중입니다. (5) | 2009.06.14 |
◆ 편견타파 릴레이 :: 아니 그런것도 할 줄 알아요? 싸게 더 싸게... (14) | 2009.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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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가을하늘 같았던 어제 동작동 가는길.....! (9) | 2009.07.27 |
온라인 커뮤니티의 이슈로 떠오른 트위터(TWitter) (4) | 2009.06.29 |
홍콩 침사추이 그리고 구룡반도 쪽에서 건너다본 홍콩섬 모습 (6) | 2009.05.13 |
아부지~~~~~~~~~~~! 술한잔 하실래유? (6) | 2009.05.08 |
현충원,盧 전 대통령 사진만 누락? (검색 및 신문사 사이트 메인에 뜨다) (0) | 2009.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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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만 부재중입니다. (5) | 2009.06.14 |
[펌글]그들은 '제2의 노무현' 탄생이 싫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0) | 2009.06.08 |
사람사는 세상 그곳에는....! & 영원한 나의 대통령(동영상 모음) (0) | 2009.06.05 |
바보같은 그가 가는길~! (8) | 2009.05.26 |
[펌글]그들은 '제2의 노무현' 탄생이 싫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국민장이 끝난 지금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정국으로 빠져들고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이미 지나간 일로 짐짓 모른 체하거나 들불처럼 번진 추모열풍을 '미친 바람(광풍)'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보수언론은 노무현의 자살을 개인과 가족의 비리로 인한 단순자살로 평가하며 검찰 수사의 정당함을 옹호하기에 바쁘다. <조선일보>는 6월 4일자 사설에서 시국 선언문을 발표한 서울대 교수들의 법적·도덕적 하자를 비판했고, <중앙일보>는 같은 날 칼럼에서 국회가 힘을 키워 대통령에 대항하라는 해괴한 주문을 내놓았다.
다른 한쪽에서도 노무현 서거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고민이 많아 보인다. '친노는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한국사회가 노무현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산법이 저마다 다르다.
'집단 괴롭힘' 당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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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모든 논의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어디를 보아도 노무현과 검찰, 노무현과 이명박, 노무현과 조중동의 대립이 있을 뿐이다. 현상적으로는 이런 관찰이 전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려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이면을 한번 들춰볼 필요가 있다.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의 자살이 현 정부의 핍박과 검찰을 앞세운 정치적 보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자살이 억울하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에 수백만이 빈소를 찾았다. 사실 노무현에 대한 핍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핍박을 받았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본격적으로 '이지메(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현직 대통령이 이지메를 당하는 현상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 목격자다.
노무현은 야당 뿐만 아니라 조중동과 싸웠고 검찰과 싸웠고 군인과도 싸웠고 고위 공직자들과도 싸웠다. 심지어는 집권당과도 싸웠다. 한마디로 노무현은 한국 사회의 그 모든 기득권 세력들의 집단 괴롭힘을 한몸에 받았다. 퇴임한 뒤에도 아방궁 논란부터 기록물 유출, 논두렁에 버렸다는 1억원 시계까지 언론과 국가기관을 동원한 그들의 이지메는 그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너무 뻔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이 노무현을 싫어했으니까 그랬겠지. 노무현이 개혁적이고 잘 타협할 줄 모르고 원칙을 강조하고 입바른 소리만 하고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만 앞세우니 기득권이 좋아할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이 뻔한 질문과 이 뻔한 모범답안에 의문을 던진다. 정말 노무현 '한 명 때문에' 그랬을까?
누가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나는 한국의 보수 세력들이 말했던 '잃어버린 10년'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10년을 잃어버렸고, 경찰은 시위대를 한껏 두들겨 팼던 10년을 잃어버렸고, 대기업은 무분별하게 탈세하며 사업을 확장했던 10년을 잃어버렸다. 보수언론은 세무조사 받지 않고 기사를 마음대로 썼던 10년을 잃어버렸고, 정치인들은 마음껏 돈다발을 뿌리고 다녔던 10년을 잃어버렸고, 군인은 아무 생각 없이 태평스럽게 국가안보를 남의 나라에 맡겨 놓은 10년의 좋은 세월을 잃어버렸다.
국민이나 국가보다 자신과 조직의 이득만 챙겼던 고위 공직자들에게도 지난 10년은 자신들의 경력 속에서 잃어버린 10년이었을 게다. 한마디로 이들에게 지난 10년은 악몽이었을 게 분명하다.
김대중 대통령이야 나름대로 오랫동안 정치를 해 왔기 때문에 그런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없는 천민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이 입바른 소리만 해대며 훨씬 더 직설적으로 원칙과 기본을 강요했으니 그 언짢은 기분이 짐작은 간다.
하지만 내 생각에 한국의 기득권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사실은 노무현이라는 한 당돌한 정치인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점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는 언제 어느 때라도 노무현 같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 갑자기 대통령이 돼서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제도적인 개연성과 다이나믹 코리아로 대변되는 한국사회의 역동성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대통령은 5년에 한 번 바뀐다. 아무리 선거 기간 공을 들이고 심지어 무리수를 쓴다고 해도 1997년이나 2002년처럼 기적 같은 역전극이 벌어질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나 같은 공화주의자에게는 이 가능성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최대 장점이지만 잃어버린 10년을 아쉬워하는 이들에게는 '엄한 놈'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구조적인 개연성이 무척이나 성가셨을지도 모른다.
일제시대부터 따지자면 근 100년 가까이 떵떵거리고 잘 살아왔는데 이제는 5년마다 마음을 졸이고 살아야 한다면 그 마음이 편치는 않을 터이다. 노무현 5년 동안 한국의 기득권이 뼈저리게 경험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노무현을 집단적으로 괴롭힌 근본적인 이유는 노무현 개인 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선거제도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노무현 같은 성가신 존재가 대통령에 오르지 못하도록 실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법이다. 즉 그들은 제2의 노무현이 출현할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무현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특히, 어떻게든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제2의 노무현' 탄생을 두려워했던 그들
이문열의 단편소설 <칼레파 타 칼라>는 보수 기득권의 이런 논리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고대 그리스의 한 도시국가에서 일어난 혁명 상황을 묘사한다. 사회적 불만이 우연적인 요소를 통해 폭발하여 혁명에 성공하지만 곧 혁명세력들이 이전의 부패세력과 비슷해진다는 요지의 내용이다. 혁명이라는 걸 해 봐야 결국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이른바 혁명적 허무주의의 대표작이다.
혁명적 허무주의가 매우 위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미래의 확실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현재의 사회적 모순이나 악을 방치하게 된다. 둘째, 현재의 개혁세력을 미래의 부패세력으로 미리 범죄시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너도 권력을 갖게 되면 똑같아질 것"이라는 비아냥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 집단따돌림'의 근본적인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노무현 개인을 정치적으로 응징하고 보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에서 탄핵받고 쓸쓸히 퇴장하는 노무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검은 돈을 받아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여 수갑 차고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 노무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한 장의 사진은 단지 개인 노무현의 위법이나 부패나 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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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노무현의 뒤를 따라 한국 사회를 개혁하겠노라고, 반칙과 특권을 없애겠다고,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하면서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주목하면서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 할 수 있고 떳떳하게 무리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고 또 누군가 소리껏 외친다면 그때 그들은 제2의 노무현에게 수의 입고 수갑 찬 노무현의 사진 한 장을 보여줄 것이다. "결국 너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어차피 누가 되든 결국에는 다 똑같아질 것이라면 그냥 지금 힘이 센 사람을 찍으라는 논리는 힘을 얻는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심리가 어느 정도는 작용하지 않았을까.
기득권의 공작은 당연히 노무현 개인에게 머무르지 않았다. 싹수가 보이는 인재들은 가차없이 초기에 싹을 잘랐다. 유시민을 비롯한 젋은 386들이 부당하게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번은 청와대 386 참모들이 소주 대신 양주만 마신다고 도덕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요하게 보도되기도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제거했던 경험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조 이래 세도정치 동안에는 똑똑해 보이는 왕가의 사내들이 암암리에 납치되거나 암살되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구체적인 증거를 나는 찾을 길은 없으나 이하응이 대원군이 되기 전에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거렁뱅이 한량 노릇을 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것만으로는 불안했던지 보수 기득권은 자신들의 사회지배를 좀 더 확실하게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방편도 강구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법이 대표적인 예다. 2002년 대선 패배의 원인을 방송 미디어 장악 실패에서 찾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벌과 보수언론에게 보도채널을 안겨주려 한다는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사장 하나 바꿨을 뿐인데 1년 만에 KBS가 이렇게 바뀔 수 있느냐는 시청자들의 볼멘 소리는 방송법 개정 뒤의 한국 사회를 가늠하게 해 준다.
기득권 세력은 공화국의 진실이 불편하다
아마도 노무현은 5년 내내 아니 일생을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탄핵이 두려워 불의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수의 입고 수갑 찬 모습, 그 모습이 개인 노무현 한 명의 굴욕과 불명예로만 기록된다면 노무현은 타협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6대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은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자살로 내몰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오랫동안 잊혔던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1항. 이 뜻이 궁금하면 그 다음 항을 보면 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주권자인 이 땅의 국민이 곧 대한민국 권력의 원천이요 주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같은 상고 출신도 지고지순한 서울대 출신을 누르고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노무현 같은 천출이 최고의 권력자에 오른 예는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이 땅에 공화국 정부를 세운 보람이 아닐까?
그러나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공화국의 진실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돈 많은 재벌 회장님들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실형을 살지 않아야 하고 상고 출신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며 힘없는 철거민들은 공권력에 타살을 당해도, 그냥 자살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그 어느 누구도 이제는 더 이상 갑자기 대통령이 돼서 자신의 아성을 위협하지 않아야 하고 그런 싹들은 시위자의 마스크를 벗겨 발본색원해서라도 잘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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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순순히 그들의 각본을 따랐다면 가장 훌륭한 실패의 본보기로서 전가의 보도가 되었을 것이다. '마치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받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처럼 비치는'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자살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노무현은 자신의 자살로 그 길을 잠시 막아 놓았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고인의 유서를 보면서 나는 충무공의 사즉생 생즉사를 떠올렸다. 기막히게도 모순적인 2009년 한국의 상황에서 노무현의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민주주의의 몰락을 잠깐이나마 저지하는 버팀목이 되어 버렸다.
보수언론은 죽음 초기부터 노무현을 자살로 내몬 자신들의 집단 괴롭힘에 대해서 비켜갔다. 검찰과 맺은 악연이니, 승부사의 인생역정이니, 무거운 수사 중압감이니, 넘쳐나는 추모물결이니 하는 건 죄다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모든 내용은 노무현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러나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자살로 내몰린 노무현은 곧 참살당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임을.
이런 까닭에 지금 우리는 노무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어떤 의미인가, 또 그의 유산은 무엇인가만을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아직 우리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건희는 면죄부를 받았고 용산에는 용역이 들이닥쳤고, 방송법은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무현이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것이 있었다면, 그토록 그가 사랑했던 조국의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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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역 7번 출구...... 저마다의 마음을 적어 오시는 분들을 봅니다.
종이가 접힌 자국이 없는 것이 아마도 이분들 전철 안에서도 저 포즈로 오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카메라를 유난히 부끄러 하시던............
부끄러만 하셨을 뿐 역겨워 하신 것은 아니기에 양산이 이뻤던 나는 찍었을 뿐이고요^^오시는 님들께 풍선을 나누어 드리는 자봉을 하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풍선 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죠... 오랫동안 반복하다보면 머리 찡하고 어지럽습니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12시..........
어느새 검찰청 앞 인도는 노란풍선과 노란 장미의 물결입니다.노무현 대통령님이 도착 할 시간이 가까워 연도에 시민들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와아!~~~ 하는 함성을 시작으로 노무현을 연호하는 소리가 오시는 것 같습니다.
착잡하고 화가 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재임 시 모든 분야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전직 대통령께 진정에서 고개 숙여 존경과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지는 못할망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깎아내리고 상처를 내서 자신들의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이명박씨의 치졸한 정치 보복과 정치 검찰에 화가 났습니다.
그때도 노무현 대통령님을 좋아하긴 했지만... 퇴임 하시고 일 년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이정도 까지 소중하고 그리워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타신 버스가 청사 안으로 들어가자 이명박씨 지지자인 할아버지들도 멋쩍은 퇴근을 하십니다.
퇴근하는 할아버지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을 듭니다.
저분들.... 이명박씨를 지지했기에 다행이지 만약 노짱님을 사랑한다며 쫓아다니면 어땠을까?.. 라는 이런 말이 어르신들께는 못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끔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반면 노무현 대통령님을 좋아하는 분들은 어딘가 모르게 확연히 다르다는걸 느낄수 있습니다.
외로울 때의 모습도 그렇고........ 슬플 때나 즐거울 때도 그런 것 같습니다.
뭔지 모를 그 무엇이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오랫동안 자리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말로 느낌을 적으려니 잘 안됩니다. 여튼 다 이쁘고 머싯다는 말이고 그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 지금의 대한민국 모습입니다.
이상과 낭만을 이야기 하며 길가에 앉아 책을 보는 것조차 죄가 됩니다.
집에 가서 보랍니다. 3번 말해서 안 들으면 연행 하겠다고 윽박지릅니다.
보다못한 어떤 시민이 통행에 불편을 주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앉아 책을 보며 노무현 대통령님을 기다리는데 왜 연행하려 하냐고 항의하자 대답을 못합니다. 노무현을 사랑한다는 게 이유입니다.
죄가 뭐냐 따져 물은게 보고받은 윗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순식간에 십 수 명을 연행합니다.
끌려가며 절규하던 어떤이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로 쟁쟁 칩니다.
“안돼요. 노짱님 가시는 모습 봐야해요!”
참 많이도 슬펐드랬습니다.................
소식 듣고 달려온 안희정님께서 항의를 해보지만 이미 피맛을 본 그들에게
민주당 최고위원이 눈에 보일리 없습니다.............
안희정님 조차 연행할 태세입니다.
취재진들이 몰려들자 그제서야 한발 물러섭니다.........
어려움이 두루 많다는 소식을 듣고도 모른체 해왔습니다... 명짱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외부에서 전혀 보이지 않게 차도 양쪽에 경찰 버스로 장벽을 만들어 놓고 인도 마저 통행을 못하게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나오시는 모습을 뵐수 없을것 같았습니다.틈새를 찾아 조용히 서있으면 금세 경찰버스로 가리고 삼중 사중으로 둘러 쌉니다.
축복 받은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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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분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새벽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한 추모객이 불
붙인 담배를 올리고 있다. 생전 담배를 즐겼던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몸을 던지기 직전 경호원에게 “담배 있느냐”고 물은 사실이
전해지고,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분향소에선 처음으로 담배를 올린 뒤 이 같은 광경이 곳곳에서 줄을 잇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후보 경선 시절 한때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피우고, 청와대에 입성해서도 부인 권양숙 여사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담배를 찾을 만큼 ‘애연가’였다. < 김해 |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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