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레이티 비티 압둘라
누구나 첫사랑이라는 기억으로 떠올려 지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각자 나름대로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가슴앓이 같은 모습이 아닐런지.......!
꿈속에서 만났던 아름다움 처럼 기억속에만 존재하지만 평생 떠올릴 수 있는 잠재 의식 속의 그것과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에게 굳이 너의 첫사랑은 어떤 색깔이었더냐 라고 물어본다면, 지금까지 단한번 만나지도 못했고, 단한번의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했고, 단한번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기회 조차 없었던 "슈레이티 비티 압둘라"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머나먼 타국 사람이 그 대상이었다고 한다면 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컴퓨터 통신이 발달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던 그런시절이 아니고 오로지 손으로 쓴 손글씨에 테두리가 빨강파랑으로 둘러쳐진 국제 우편으로만 존재하던 그러한 추억은......
고교 1학년때 우연히 모 해외펜팔 소개소에서 소개받은 사람이 말레이지아 소녀였는데 나이가 동갑내기였다.
당시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 단어를 꿰어맞춰 개발새발(??) 되지도 않는 문장으로 보내는 내 편지에 매우 성실히 답장을 보내오는 그녀였다.
나이 50을 넘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외국인 포함)의 영문 필적을 봐왔지만 아직까지도 그녀처럼 예쁜 손글씨를 쓰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원래가 한글 쓰기 조차도 소문난 악필인 내가 그녀의 필적에 대적할만한 솜씨로 쓸 자신도 없었지만 그래도 당시 내딴에는 이쁜 글씨를 쓰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생각이 난다.
그러던 어느날 편지 봉투에 들어있던 사진을 받아들고 무척이나 신기해 했던 기억은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그리고 또 군대가서 까지도 몇번의 편지가 이어졌는데 어느날인가의 편지에서 그녀는 결혼을 했고 남편은 여행사 직원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후로 군대를 제대하고 한두번 오가던 편지가 끊겨 더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늘 자신을 자기가 좋아하는 "Sue"라는 애칭으로 불러 달라던 그녀였고 동남아시아인 특유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인형처럼 아름답던 모습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말레이지아의 페낭 이포라는 주소만 기억하고 있을뿐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알수가 없다.
그녀의 아버지가 경찰공무원이라 했던 기억이 난다.
살면서 빈번하게 해외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지만 유독 말레이지아엔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혹여 언젠가 말레이지아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찾아보리라 했지만 아직까지도 기회가 없다.
지금도 가능하다면 편지속에만 존재하던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우리의 친구들 처럼 늙은 모습일까 만나보고 싶다...얼마나 변했을지 나는 지금도 그녀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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