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사람사는 세상 - “비석은 검이불루하게, 안장시설은 화이불치하게”
“비석은 검이불루하게, 안장시설은 화이불치하게”
- [기자회견] 노무현 대통령님 안장 및 묘역 계획 설명
o 전국 8도 각지에서 기증된 다양한 석재로 묘역 조성
o ‘참여정부 5년의 기록’ 및 추모영상 DVD 부장품으로
o 묘표는 지관스님 글씨로, 어록은 신영복 교수 글씨로
유홍준 비석건립위원장은 7월 7일 오후2시 봉하마을 회관에서 기자회견(아래 사진)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님 안장과 묘역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밝혔습니다.
유
위원장은 비석과 안장시설의 설치에 대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로 그 미학을 대신했습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시조 온조왕 15년
춘정월(春正月)에 새로 궁실을 지었는데 이같이 표현했다고 합니다.
제작자와 지역단체, 안장시설 재료 산지기증
먼저 대통령님 묘역과 비석에는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국정철학에 맞추어 전국 8도의 물산이 고루 사용됩니다. 이들은 모두 제작자나 지역 자치단체, 시민단체 등의 산지 기증으로 제작됩니다.
안
장시설의 경우 석함은 충남 보령 남포오석(삼부석재 남기택), 연꽃석함은 전북 익산 황등석(금강조각 윤태중), 유골이 들어가는
백자합은 경기 성남 백자가마(도예가 박영숙), 방습 참숯은 강원 횡성, 모래는 경남 김해 화포천에서 채취된 것입니다.
묘역을 중심으로 바닥에 설치할 두께 12cm 정도의 넓적한 박석도 제주도 현무암(제주4.3유족회), 강화도 박석(강화군), 남해 청석(남해군), 황해도 해주 쑥돌(창림통상 정소진) 등 전국 각지의 돌이 사용됩니다.
대통령님 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예법에 따르고, 국가원수의 묘소로써 예를 갖춰 진행됩니다. 유골 봉안은 부부 합장묘의 예에 따라 공간을 확보하고 개폐구조를 갖추기로 했습니다.
유
골을 모실 백자합(가장 오른쪽/직경 30cm, 높이 25cm)은 연꽃 모양의 석합(가운데/직영 50cm, 높이 50cm)에 담아
그 석합을 대리석 석함(가로 124cm, 세로 68cm, 높이 79cm)에 봉안하고 지하에 매장하는 방식으로 안장합니다.
석함에는 부장물로 참여정부 국정홍보처가 제작한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라는 5부작 다큐멘터리 DVD와 대통령님 일대기와 추모영상을 담은 DVD가 들어갑니다. 석함 덮개돌에는 한자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2009’라고 새깁니다. 이 글씨는 묘표를 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썼습니다.
이
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대통령님 어록이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글씨로 새겨진
강판을 덮습니다. 그 위에 충남 부여의 석산에서 발굴한 두께 40cm, 가로 세로 각각 2m 정도의 화강암 재질 너락바위 형태
비석을 봉분처럼 올리게 됩니다. 이 비석에는 앞서 발표한 대로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겨졌습니다.
묘
역에서 봉화산 사자바위 방면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는 길이 30m, 높이 3m, 두께 30cm의 철골 강판을 세워 ‘벽’
역할을 하도록 하고, 주변 경관과 모역을 분할하였습니다. 또 조명등이 설치된 9m 높이의 국기게양대를 설치하여 묘역을 비출
예정입니다.
유홍준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은 미적분의 해법”
다음은 유홍준 비석건립위원장의 모두 발언입니다.
1. 진작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49재 전에 일을 마쳐야 해서 이제야 마련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유족과 전례위원, 그리고 기자분들에게 그간의 경과와 오늘 이후 지하에 안장될 모든 시설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3. 노무현 前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을 당부하셨고, 영부인께서 그 건립을 제게 위임하셨을 때 사람들은 “아주 작은 1차 방정식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그깟 일에 무슨 위원회냐“고 꾸짖기도 하였습니다.
4. 그러나 화장된 유골을 산골하지 않고 매장을 하되 봉분은 쓰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비석건립은 안장 시설과 함께 이뤄져야 하고, 대통령님 유언의 “아주 작은 비석”이란 검소하게 하라는 뜻인데 전직 국가원수의 묘역이고 비석이니 누추해 보여서는 안 되고 예기치 못한 조문 열기에서 보여준 국민의 뜻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니, 이는 3차 방정식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전례(前例)가 하나도 없지만 예법(禮法)에서 어긋나지 않고 또, 전통(伝統)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나아가 옛날보다 더 잘 해야 하는 미적분의 문제였습니다.
※ 미적분의 해법 : 밥 먹으면서도 고민... 고민...
① 기본은 비석이다. 어찌됐든 돌이다.
②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는다면 = 고인돌(支石墓)
③ 아주 작아야 한다. 북방식(北方式)이 아닌 남방식(南方式)
④ 그렇다면 창녕 유리 고인돌(메주덩이)가 아닌 고창 상갑리 고인돌(너럭바위)이다.
⑤ 그래서 짜장면 먹다가 떠올라 이렇게 스케치했다.
※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승효상씨 이로재건축연구소로 뛰어갔더니 그는 다음 화면처럼 구상하고 있었다. 상수(上手)는 달랐다. 나는 고인돌 옆에 아주 작은 비석을 생각했으나 승효상씨는 덮개돌이 바로 비석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했다.
<제1부> 약속, 시대의 책임 (정치)
<제2부> 구시대의 막내에서 새시대의 맏이로 (경제, 사회)
<제3부> 미래는 꿈으로 만들어진다 (통일, 외교, 안보)
<제4부> [내가 만난 노무현] “그와 함께 한 시대를 건넜다”
<제5부>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 “시대는 단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출처 : 사람사는 세상 원문출처 : 오마이뉴스 노무현 묘역에 남북 팔도 돌·모래 깔린다
노무현 묘역에 남북 팔도 돌·모래 깔린다 |
'아주작은비석 건립위',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묘역 설명 |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陊, 검이불루 화이불치)"(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15년(BC.4)조에 새 궁실을 표현한 말).
제 16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과 비석 제작을 맡았던 유홍준 아주작은비석 건립위 위원장(전 문화재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대해 이같은 '미학'을 부여했다. 그는 "지상의 비석은 검이불루하게, 지하의 안장시설은 화이불치하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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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묘역과 비석에는 남·북 팔도의 대표적인 돌과 모래가 사용되었다. 건립위는 "노 대통령의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국정철학에 맞추어 묘역 조성과 안장 시설에 전국의 물산이 고루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안 장시설부터 보면, 석함은 충남 보령 남포오석(남부석재 남기택 기증), 연꽃석합은 전북 익산 황등석(금강조각 윤대중 기증), 유골이 들어가는 백자합은 경기 성남 백자가마(박영숙 기증), 습기 방지를 위해 들어가는 참숯은 강원도 횡성, 모래는 경상도 화포천에서 갖고 온 것이다.
바닥에 놓인 박석도 전국 각지에서 왔다. 제주 현무암(4.3유족회 기증)과 강화도 박석(강화군 기증), 남해 청석(남해군 기증), 북한 황해도 해주 쑥돌(애석)이 사용되었다. 해주 쑥돌은 창림통상 정소진 대표가 중국 상하이를 통해 수입한 돌이다.
이제 생산되지 않는 돌도 많은데, 금강조각 윤대중 대표는 15년 전 작품하기 위해 소장하고 있던 돌을 내놓았고, 남해군도 보관하고 있던 돌을 내놓았다. 유홍준 위원장은 "전국 8도의 돌과 모래 등 물산들이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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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위원장 "밥 먹으면서도 고민했다"
건 립위는 7일 오후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의 묘역 조성과 안장방식 등에 대해 설명했다. 봉하마을회관에서 열린 설명회에는 유홍준 위원장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건축가 승효상씨 등이 참석했다. 유 위원장은 봉화산 사자바위 기슭 아래에 있는 묘역으로 이동해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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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위원장은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안장될 모든 시설물을 공개한다"면서 "노 전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을 권양숙 여사께서 제게 위임했을 때, 사람들은 '아주 작은 1차 방정식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그깐 일에 무슨 위원회냐고 꾸짖기도 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화장된 유골을 산골하지 않고 매장하되 봉분을 쓰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비석 건립은 안장시설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유언의 '아주 작은'이란 검소하게 하라는 뜻인데, 전직 국가원수의 묘역이고 비석이니 누추해 보여서는 안되고, 예기치 못한 조문 열기에서 보여준 국민의 뜻은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크니 이는 3차방정식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이전 전례가 하나도 없지만, 예법에서 어긋나지 않고 또 전통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나아가 옛날보다 잘해야 하는 미적분 문제"라며 "미적분의 해법을 찾기 위해 밥 먹으면서도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 는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는다면 고인돌이라 생각했고, 아주 작아야 한다면 북방식이 아니라 남방식이어야 하고, 그렇다면 메주덩이 모양인 창녕 유리 고인돌이 아닌 너럭바위 모양의 고창 상갑리 고인돌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자장면 먹다가 떠올라 스케치했다"고 덧붙였다.
비문에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쓴 것에 대해, 그는 "약력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의 비석에도 이력을 붙이지 않았던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 는 "바로셀로나 무명용사의 비와 파르테논신전, 우리나라 근정전 등 세계 40여 곳의 시설물을 조사해 참고했다"고 밝혔다. 묘역 주변 바닥에 놓인 박석 15개에 추모객들이 남긴 글을 새겨 놓았으며, 안도현 시인과 공선옥 작가가 쓴 '헌시'의 일부도 새겨 놓았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건립위원인 황지우 시인한테 애초에 비문을 부탁하려고 하니, 그는 절대 비문을 우리가 쓰면 안 된다고 했다"면서 "비문을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추모 기간에 나온 일반 국민들이 쓴 글보다는 못할 것이기에 추모의 글을 박석에 새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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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 예법 따라
노 대통령의 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 예법에 따른다. 또 국가원수 묘소로서 예를 갖추었으며, 건립위는 박명근 동국대 강사와 윤용이 명지대 교수한테 자문을 받기도 했다.
유골 봉안은 부부 합장묘의 예에 따라 공간을 확보해 놓았으며, 열고 닫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앞으로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별세하면 노 대통령 유골함 옆에 같이 안장하게 된다.
덮 개돌에는 한자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1946~2009)'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이 글씨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쓴 것이다. 유골함이 들어갈 연꽃석합은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디자인하고, 금강조각 윤태중 대표가 제작했다.
유골이 들어갈 백자합은 도예가 박영숙씨가 제작했다. 박영숙씨는 청와대 외빈 접대용 그릇을 만들기도 한 도예가다. 백자 지석에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2009'이라고 새겨넣었다.
묘 역에는 9m 높이의 국기게양대가 설치되는데, 그 속에 잘 보이지 않게 밤에도 불빛을 비추는 조명장치가 들어간다. 노 대통령의 유골을 안장할 때 부장품도 들어가는데, 건립위는 유족과 논의해 2개의 DVD를 넣기로 했다. 부장품으로 들어가는 DVD에는 참여정부 5년의 기록과 추모자료 영상이 담겨있다.
유홍준 위원장은 "세계 건축사에 내놓아도 자신있다는 생각으로 했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국가의 묘역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만든 묘역이 앞으로 국가사적이 되고 세계 건축가들이 와서 둘러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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