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을 개봉 첫날 관람했다. (2013년 12월 18일)

잠시 묻어 놓았던 그리움이 되살아나고, 어느글에 다른이가 올려둔 사진을 보다가 울컥 ㅠ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다시금 사진 몇장 올려본다.


작금의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하기에 새삼 더욱더 그가 참 좋은 대통령이었구나 싶다.


참고 : 故노무현 전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은 어디까지 실화일까?



















노통(1920x1200)




오늘 2013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진 아버지를 뵈러 다녀왔습니다.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했기에 현충일의 의미를 돌아보면서, 남들은 현충일이라고 다들 찾아오는데 찾아뵙지 아니하면 혹여 외로우실까 싶어 오랜만의 방문이었습니다.


늘 그렇지만 오늘도 현충원 앞 인도를 꽉 메울 정도로 참으로 많은 추모객들이 방문을 하더군요.

여기저기 참배를 하는 이들과, 참배를 마치고 나무그늘에 모여앉아 준비해온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분들....등등 구석 구석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아버지를 뵈러 충혼당으로 올라가면서 제일 먼저 사진전시관에 들러서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건재(?)한가를 확인 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만4년전인 2009년 6월 13일날 이곳 사진전시관을 우연히 들렸다가 노무현 대통령 사진만 부재중인 사실을 발견하고 최초로 문제 제기를 했던 당사자인지라, 만4년이 흐른 오늘 현재까지 잘 계시는지 확인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래는 당시에 쓴 글들 입니다.


지난 2009년 6월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진 제 부친을 뵈러 갔다가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만 부재중"인 사실을 발견하고 당일 자정을 넘겨 14일 새벽 3시경 문제 제기의 글을 본 블로그에 올린 후 다음포털의 아고라와 사람사는 세상을 통해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 위의 링크 글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 제기 4일째 이후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추가했다는 현충원의 공지가 뜨고, 다시 현장을 방문하여 확인을 하려던 것이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 보니 차일피일 미뤄졌었고, 제가 한국에 있지 아니했던지라 더더욱 늦어졌습니다.



사진전시관


사진전시관 1층 오른쪽에 있는 제3전시관에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과 함께 주요 업적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최초 문제제기 당시 부재중이던 노무현 대통령, 문제 제기 4일후에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되었는데 오늘까지도 건재합니다.

당시에 현충원은 "공간이 부족해서, 리모델링 할 예정이라서 노통 사진을 준비하지 않았다" .....라는 변명을 하더니 4년이 흐른 지금까지 전혀 변한것 없이 그대로입니다.

결국 입에발린 거짓 변명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노통 좌측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정면으로 한컷 찍어봅니다.


사진전시관 곁에 현충관


사진전시관을 마주 바라다 보고 있는 유품전시관


사진전시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건재를 확인하고 아버지가 모셔진 충혼당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바라다본 수많은 영령들




아버지에게 가기전에 먼저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뵙니다. 묘역이 있는 언덕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묘역 입구


김대중 대통령 묘역 입구 안내석


김대중 대통령 묘역 입구 안내석을 지나 이길로 접어들면 묘역이 있습니다.


위에 작은 길을 따라가면서 곁에 보이는 울창한 나무들


김대중 대통령 묘역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묘역 규모에 비해 현격히 소박할 정도로 작아 보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뵈러 올때마다 매번 김대통령 묘역을 참배 합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참배를 합니다. 어떤 연세드신 할머니 두분이 참배를 마치고 걸어가면서 "언니덕에 출세했네, 이런 곳엘 다 와보고" 라는 말씀들을 하는것이 들립니다.


현충원 경내가 워낙 넓어 걸어다니다 보니 화창한 날씨와 더불어 기온이 높아 땀이 비오듯합니다.

미리 준비했던 수건으로 미쳐 닦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흘러내립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저도 분향을 하고 참배를 했습니다. (참배중인 저분 저 아닙니다)



김대통령 참배를 마치고 다시 묘역 앞의 도로를 따라서 이제 제 아버지에게로 갑니다.




다시 마주치는 수많은 영령들


저 멀리에 제 아버지가 모셔진 충혼당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충혼당 앞에 참배를 위한 향로와 참배대가 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꽃을 드리고 갔군요.


이 충혼당은 납골당으로 운영이 되는 곳으로 제 아버지도 이곳에 모셔저 있답니다.  본 건물엔 이미 공간이 부족한 상태인데 우측에 공사중인 건물이 아마도 증축을 위한 공사인듯 합니다.



제가 늘 메고 다니는 가방이 놓여진곳 위 중간쯤에 제 아버지가 계시네요.  오랜만에 뵙기에 아버지께 절을 올렸지요.


충혼당을 바라보며 "또 오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떠나왔습니다. 아부지~! 저 가유 ! 담에 또 올게유.


지난 2009년 6월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진 제 부친을 뵈러 갔다가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만 부재중"인 사실을 발견하고 당일 자정을 넘겨 14일 새벽 3시경 문제 제기의 글을 본 블로그에 올린 후 다음포털의 아고라와 사람사는 세상을 통해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 위의 링크 글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 제기 4일째 이후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추가했다는 현충원의 공지가 뜨고, 다시 현장을 방문하여 확인을 하려던 것이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 보니 차일피일 미뤄졌었고, 제가 한국에 있지 아니했던지라 더더욱 늦어졌습니다.

당시에 국립서울현충원 공지에 이미 수정된 현장의 사진이 올라오긴 했었지만, 문제를 처음 이슈화 했던 장본인으로서 즉시 현장 확인을 했었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여 계속 빚을진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오늘(밤 12시가 넘었으니 어제) 다시 제 부친을 뵈러 가는길에 현장을 방문하여 제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비행기 뒤쪽으로 문제의 사진전시관이 보입니다.

정면에서 바라 본 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

사진전시관 입구 오른쪽에 있는 제3전시관, 이곳이 사진이 누락되었던 문제의 전시관 입니다.

사진전시관 입구 오른쪽에 있는 제3전시관,  오른쪽 문 안쪽으로 약간 어둡지만 사진이 보입니다.

오른쪽에 노무현 대통령이 계신 벽면 부분을 새로 추가한 것이더군요. (이전에 이어져 있던 것들을 떼고 새로 붙인듯)

아래는 이전에 문제의 증거 사진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만 부재중)

늦은 숙제(??)를 이렇게 마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덕분으로 해결되었던 사안입니다.
다시금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은 다큐멘터리라서 퍼왔습니다.

출처 :
사람사는 세상 [시민제작 다큐멘터리]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 (2009.07)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추모 다큐멘터리가 나왔습니다. 48분짜리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이 그것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기획, 제작, 편집하였습니다. 십시일반으로 제작비의 절반을 마련했습니다.

비 교적 짧은 분량의 추모영상이나 UCC(이용자제작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첫 ‘시민제작 다큐멘터리’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의 질과 완성도 역시 매우 뛰어납니다. 내레이션에는 전문 성우들이 참여했습니다.



“안하면 안된다” 보름간 합숙하며 기획

제작을 총괄한 이창희씨(50세)는 현재 ‘참언론을 위한 모임’(참언모)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광고기획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크게 도움 됐다고 합니다. 대본은 작가 김우중씨(28세)가 썼습니다. 전문 구성작가한테 맡기면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김씨가 떠맡았다고 하지만 열정 없이는 엄두도 못낼 일입니다. 다큐멘터리 대본을 집필한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49재 때 상영을 목표로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보름만에 끝내야 했습니다. 그는 짧은 시간에 대본을 완성하기 위해 대통령님 관련한 책을 3일만에 8권을 독파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대본은 전체 수정만 8번을 거쳤습니다.

이 번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숨은 일꾼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창희씨와 함께 영상제작을 제안하고 기획한 신정웅씨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회사원인 그는 퇴근하는 대로 제작실로 달려와 ‘노무현 스토리’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직접 찾아주며 대본 감수를 자처했습니다. 대한문 시민분향소 운영에도 참여했던 그는 "깨어나라! 대한민국!"의 카페지기입니다.

제 작, 편집은 이훈규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 맡았습니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담은 <146-73=스크린쿼터+한미FTA>을 비롯하여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빅파이, 한국영화산업 나눠먹기> <신자유주의의 도발들> <아펙기동대>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독립영화계의 ‘베테랑’입니다.

시 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모금으로 제작비는 현재 절반 정도가 충당됐습니다. 나머지는 외상 거래로 남아 있습니다. 촛불집회에서 밥차 운영과 커피, 녹차, 간식 제공 등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유명한 ‘다인아빠’. 대한문 시민분향소 운영에도 참여했던 그 역시 다큐멘터리 제작에 힘을 보탰습니다.

'다인아빠의 가장 아름다운 나라' 카페를 통해 모은 성금 덕분에 초기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한겨레를 사랑하는 모임' '참언론을 위한 모임' '깨어나라! 대한민국!' 등의 시민모임이 이번 영상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영어, 중국어 버전 제작.. 대통령님 뜻 세계로 알릴 터

이들은 대한문 시민분향소를 운영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획했습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안하면 안된다”는 의지로 서로를 북돋우며 아예 보름 정도 합숙을 했고,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무 엇이 이들을 이토록 강해지도록 했을까? 이창희씨는 “대통령님이 우리에게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몸을 던지신 것이라면 앞으로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많은 시민들과 이를 공유할 수 있게 영상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는 “대통령님 서거를 단순한 자살로 보지 않고 간접 살인, 포괄적 살인으로 봤다”며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가’를 규명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애초 제목은 <누가 왜 노무현을 죽였는가>였습니다.

대 통령님이 어떤 목표와 열정을 갖고,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시려 했는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좀더 쉽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제작팀. 이를 위해 한국어 버전말고도 영어, 중국어로 더빙하여 유투브 등을 통해 세계로 알릴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더 필요할 텐데, 마련할 방안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되돌아온 답변입니다.

“지 금까지 우리는 모든 걸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촛불집회도, 분향소도 우리 힘으로 운영했어요. 일부에서 걱정도 했지만 힘을 모으니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지잖습니까? 영어, 중국어 버전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식에 '사람사는 세상' 만들기를 열망하는 시민들에게 전달된다면, 우리 뜻에 동참할 시민들이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 <노무현의 미완성공화국> 다큐멘터리 해외버전 제작 관련한 내용은 ‘참언모’ 카페(http://cafe.daum.net/chamunmo)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은 나의 캡틴, 평안하소서
노무현,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09.07.12 16:25 ㅣ최종 업데이트 09.07.12 18:08 김정란 (rourou)


  
2003년, 2월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전대통령서거

 

나에게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별로 없다. 너댓 차례 만났던 것이 전부였다. 내가 그를 처음 눈여겨보기 시작했던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5공 청문회 때였다. 그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의분에 가득찬 정의로운 사람일 뿐 아니라, 매우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의 낮은 수준에 절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등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우와, 웬일이니, 올바르고 똑똑한 국회의원도 있네"라고 생각했다. 그가 증인들을 몰아붙이는 솜씨는 대단했다. 명쾌한 단문의 질문들. 논리적으로 꼼짝 못하도록 치밀한 틀을 짜는 기술. "대단하다. 저 사람 누구지?"

 

정치인 노무현은 그렇게 처음으로 나에게 "올바르고 똑똑한 국회의원"으로 각인되었다. 그것은 그를 처음으로 직접 만났던 자리에서도 나에게 남겨진 인상이었다. 그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월간 <Win>에서 차세대 주자들을 시리즈로 인터뷰하는 기획이 있었는데, 그때 노무현이 제1 주자로 선택되었고, 나는 그 인터뷰 자리에 패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었다. 그는 교수들이 던지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상당히 완비된 매뉴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나 절대 운명 앞에 홀로 섰던 그, 노무현

 

그를 두 번째로 만났던 것은 부산 어디에선가였던 것 같다. 지나가는 길에 그의 모습을 보았고, 그냥 수인사 정도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 번째 만남은 상지대학교에서였다. 그때 우리 학교에서는 국민의 정부 정책 토론회가 열렸었는데, 당시의 기라성같은 정치인들 여러 명이 참석했었다. 교수 한 사람이 발제를 하고, 그 발제에 대해 정치인들이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노무현은 열 댓 페이지에 해당하는 교수의 긴 발제문을 단 몇 줄로 명쾌하게 요약한 뒤에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런 저런 수사를 늘어놓으며 다른 정치인들을 경계하면서, 자기를 알리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그는 군더더기 없이 바로 핵심으로 들어갔다. 역시 "무섭게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쿨하고 페어하다는 느낌. "음, 깔끔한 실무형이군. 게임 룰을 아는 사람이야. 정치적 췌사가 없다. 무지 마음에 드네. 저 사람 대통령 되면 좋겠다. 그런데 민주당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그는 나에게 합리성의 아이콘 같은 것이 되었다. 그는 기적처럼 민주당 경선을 통과했다. 2002년에 나는 파리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파리 교외 낭테르의 한 조그만 방에 앉아서 인터넷을 껴안고 살았다. 프랑스의 인터넷은 느리고 자주 끊겼다. 게다가 시간 차 때문에 밤낮이 뒤집힌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광주 경선 때는 혼자서 소리치고 악악대고 펄쩍펄쩍 뛰고 난리를 쳤다. 정말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9월쯤 귀국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한심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그를 흔들어대면서, 정몽준에게 추파를 던졌다. 그리고 이어진 아슬아슬한 후보단일화 드라마. 노무현이 정몽준의 무리한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노무현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그대로 다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던져야 할 때, 과감하게 던진다. 그러는 그의 태도를 두고 사람들은 승부사적 기질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진정한 '실존적 투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떤 순간, 운명 앞에 단독자로 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그 뒤에는 절대의 운명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그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한 정치인은 없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미공개 사진] 손녀를 무등 태우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2007.9.29)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그는 꼼수를 쓴 적이 없다. 꼼수 외에는 아무것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의 행위는 최고수의 고단수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운명 앞에 한 번도 벌거벗고 서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유불리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자들은 노무현이 내리는 결정 앞에서 판판이 나가 떨어진다. 탄핵 사태 때에도 탄핵을 시도했던 자들은 민심의 역풍을 맞자, 노무현이 탄핵을 유도했다고 법석을 떨어댔다. 노무현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했을 뿐이다. 거기에는 아무 꼼수도 없다. 그는 승리하기 위해서 잔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잔머리를 쓰는 자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실존적 투기' 앞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개혁당 창당식 때 그를 보았다. 내 바로 옆 자리에 그가 앉게 되었는데, 나는 카메라가 따라붙는 것이 싫어서, 딴 사람을 그 자리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옆 옆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노무현이 문성근의 열정적인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그 유명한 장면에서 카메라에 잡힐 뻔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임명장 수여식 때, 그리고 그의 임기 말에 안동에서 열린 균형위 세미나 때 그를 보았다. 그날 머리가 엉망이어서 베레모를 쓰고 갔는데, 악수할 때 방싯 웃으며 "어, 모자를 쓰셨군요. 잘 어울리네요"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따뜻한 손,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그 뒤로 엷게 비치는 어떤 깊은 피로감과 쓸쓸함. 그것이 그를 만난 마지막이었다. 나는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5년 내내 기득권 세력에게 물어뜯기고,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서조차 왕따당했던 대통령. 대통령이면서도 세상의 모든 모욕을 다 겪어야 했던 사람. 그렇게 얻어맞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았던 사람. 미련곰탱이 원칙주의자. 그러나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이 희귀한 정치인은 나에게 누구였을까?

 

그가 봉하마을로 내려간 뒤, 그를 보겠다고 달려가는 사람들 곁에 있는 그를 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불려 나오면서도 늘 웃었다. 어이구, 이 양반 대통령 그만둔 게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 이른 바 '노간지'로 불리는 사진들을 꼬박꼬박 챙겨보면서 나는 행복했다. 그가 더 이상 사악한 혓바닥으로 무장한 저 잔인한 기득권 세력과 조중동에게 시달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가 자연 안에서 그 특유의 어린아이같은 천진함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안심했다. 때로는 그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대통령이 너무나 피곤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어지간히 빠지면 한 번 찾아가리라, 했었는데… 그랬었는데….

  

그가 간 뒤, 내장에서까지 핏물이 쏟아져 나오다

 

  
5월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노란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그가 가고 난 뒤, 나는 프랑스인들이 "내장적 슬픔"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온몸이 울다 못해서, 내장에서까지 핏물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추도사를 써달라고 했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거절했다. 아마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추도문 같은 것은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죽음이 객관화되지 않는다. 그날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진 것은 노무현이 아니다. 그날 죽은 것은 나다. 내가 죽은 것이다. 나는 그와 함께 모욕당하고, 그와 함께 절망하고, 그와 함께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나는 길게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잘랐다. 무엇인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곤 이상한 느낌이 엄습했다. 매일처럼 모욕당하는 느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내 얼굴 위로 역하고 끈적거리는 침 같은 것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이른 바 박연차 게이트가 보도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점점 더 심해졌다. 아침마다 얼굴에 떨어져 있는 그 역한 침은 점점더 끈적거리는 것으로 변했다. 나중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 가슴이 벌벌 떨리고, 숨이 가빠졌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대체 이 사람을 어디까지 모욕해야 저들의 잔인한  욕망이 가라앉을까. 나는 울부짖었다. "주여, 대체 언제까지니이까?"

 

나는 한순간도 노무현 대통령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 같은 사람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기질의 소유자들은 굉장히 높은 자존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들이 설정한 존재의 절대 기준을 충족시키기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루하게 거짓말을 하고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한다. 만일 문제가 자신 하나에 관계된 것이었다면, 노무현은 끝까지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그가 살아 있는 한, 저 잔인한 자들이 온갖 방법으로 그와 그의 주변에 가하는 모욕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법적으로 승리하더라도, 그들이 그의 피를 다 빨아먹은 뒤에, 그에게 남겨질 것은 남루한 육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추악한 송곳니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들에게서 노무현이라는 먹잇감을 빼앗아야 했다. 그의 죽음의 외적 형식은 자결이지만, 그 내용은 타살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과 언론이 그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고 피를 빨아먹었다. 그에게는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몸을 던질 힘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바위 위로 올라갔다.

 

노무현 존재 자체가 악몽이었던, 뻔뻔한 에일리언들

 

  
2008년 8월 13일. 생가마당에서 방문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계시는 대통령님. 손녀 서은양이 신기한 듯 관람객들을 보고 있다.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노무현대통령

 

모든 언론이 와글와글 그를 모욕하고 있던 무렵 어느 날 밤에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파리한 얼굴을 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힘없이 입을 달싹이며 뭐라고 말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렸다. "노무현이 죽었대." 검은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불었다. 그리고 나뭇잎들이 갑자기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차가운 냉기가 훅, 하고 느껴졌다. 나는 꿈의 냉기에 놀라 오밤중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 앞의 어둠이 스멀거리며 내 몸을 에워쌌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양반이 이 사악한 자들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일은 그 방법 밖에 없는 걸까?" 그리곤 그 꿈을 잊어 버렸었다. 그런데 2009년 5월 23일 새벽에….

 

그런데 과연 노무현은 대통령이었던가? 오세훈 서울 시장을 위시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하러 국회의사당에 들어갔을 때, 오만한 자세로 삐딱하게 앉아서 일어서지조차 않았다. 그들은 있는대로 건방진 포즈를 취하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경멸감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에게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는 나라는 천지 간에 대한민국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그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소위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온갖 천박한 욕지거리로 그를 모욕했다. 그들은 노무현을 증오하고 모욕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이유인 것처럼 굴었다. 그 모욕은 노무현 대통령의 5년 임기 내내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 컬럼 등에서 노무현을 옹호하던 나도 나중에는 지쳐 빠졌다. 상대방은 뻔뻔함을 무기로 가지는 에일리언들이다.

 

그들에게는 논리도 철학도 영혼도 없다. 단지 자신에게 유리하기만 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바꾸고,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운다. 불리하면 "빨갱이"라고 악을 쓰면 그만이다. 논리도, 양식(良識)에의 호소도 아무 소용도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진리는 '나의 이익'이다. 그것을 건드리는 자는 모두 잔인하게 밟아 죽인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단지  처치해야 할 적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이를 드러내고 5년 내내 노무현을 물어뜯었고, 그리고 퇴임 후에도 물어뜯어 결국은 죽여 버렸다. 도덕적인 노무현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부도덕의 굴레를 뒤집어 씌워 죽여야 했다. 가능한 한 그를 더러운 존재로 만들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까불었다"고 하는, 대한민국 보수 언론

 

역사에 길이 남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진홍의 칼럼은, 노무현을 더럽히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발작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박연차가) 돈이 아니라 똥을 지천으로 뿌리고 다녔다(...) 그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쳐바르고 온몸 전체에 뒤집어쓴 사람들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그 부인이었으며 그 아들이었다." - <중앙일보> 2009년 4월 11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엿새째인 지난 5월28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어린이와 조문객들이 조문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똥"이라는 말이 신문 칼럼에 등장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우아한 포즈를 취하기를 즐기는 기득권 지식인이 이렇게 참지 못하고 격하고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모든 언어는 무의식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정진홍을 위시한 기득권 세력은 그 동안 깨끗한 노무현 때문에 자기가 "똥묻은 자"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정진홍 등은 원한에 사로잡혀 "똥"을 노무현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진홍은 이 칼럼으로 인해서 영원히 "똥을 뒤집어쓴" 채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에게 가해진 집단 린치의 원인은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조선일보> 김대중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웅변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어쩌면 노씨와 그의 사람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정도는 노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조선일보 2009년 3월 30일 자)"라고 쓴다.

 

안 까불었으면, 즉, 그들에게 투항하고 고분고분 말을 들으며 그들의 곳간을 채워주는 머슴 노릇이나 했으면 그렇게 심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까불었다. 즉 주제넘게 기득권의 이익을 위협하면서 공동체의 선을 위해 사회를 재편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나라 기득권 세력의 최고 브레인 중 한 사람인 <조선일보> 김씨는 "까불었다"는 지극히 상스러운 표현을 쓰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이 표현의 천박함과 노골적인 계급성을 눈여겨 보라. 세계 어느 나라 칼럼에서 이런 표현이 사용되겠는가? 가히 역사적인 사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본질을 알려주고 싶어서 몸이 달아 있다.

 

"알았어? 네가 비리를 저질렀는지 안 저질렀는지 그건 사실 문제가 안돼. 그건 문제의 핵심이 아냐.  우리가 이명박이 저지른 비리를 문제삼던가? 우리 편은 얼마든지 비리를 저질러도 돼. 그건 우리 이익을 해치지 않거든. 본질적인 것은 네가 까불었다는 것, 즉, 우리의 기득권에 반기를 들었다는 거야. 너는 지금 그래서 고통당하고 있는 거야."

 

김씨는 그렇게 전직 대통령을 '노씨'라는 경멸적 호칭으로 부르면서, 노무현이 당하고 있는 모욕의 본질을 알려줌과 동시에 자신이 힘을 가진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라는 것을 과시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김씨 등의 잔인한 가학적 욕망은 채워질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은 그들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아직도 가슴을 후벼 파는 그의 마지막 한 마디

 

  
10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이 예정된 가운데 정토원에서 49재를 마친 고인의 유골함이 아들 건호씨에 의해 안장식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 권우성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노무현에게 가해지는 집단 린치를 보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 중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했다. 노무현은 일국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영주들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광장으로 끌려나와 바퀴형에 처해진다. 그의 사지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바퀴에 묶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몸에 침을 한 번씩 찍찍 뱉으며 지나간다.

 

검찰이 그의 피의사실이라고 줄줄이 흘렸던 것들 중에서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팩트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주님들의 행동대원인 검찰이 말하는 그대로 노무현의 죄를 복창했다. 검찰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이며, 로열 패밀리의 중심 세력인 그들 조직의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던 노무현에게 당했던 창피를 복수하려는 듯, 최소한의 증거도 확보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질질 흘리며 잔인한 여론재판을 수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던 날, 이층 창문에서 그를 내려다 보면서 활짝 웃고 있던 이인규, 홍만표 검사의 얼굴은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웃고 있는 잔인한 얼굴들을 형틀에 묶인 노무현의 고난과 함께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 길을 나서는 노무현을 따라간다. 새벽 공기는 맑고 차다. 그는 경호원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묻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한다. 이 말들이 발설된 시간대와 정황은 나중에 경호원의 초기 진술과는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우리는 그렇게 그를 모른 척 비껴 지나갔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다가가 그의 진실을 믿는다고, 사악한 혓바닥들의 거짓에 굴하지 말라고, 우리가 지켜 드리겠다고 말해야 했다. 우리는 그를 혼자 두고 "지나갔다" 그런데, 보라.

 

노무현은 "저기 지나가지" 않고, 그의 몸을 던져 "여기 온다". 영원히 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함이 정토원에 도착할 예정인 가운데 29일 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추모객들이 촛불로 '노짱님 사랑해요' 글자를 만들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그는 부엉이 바위 아래로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마음속, 깊은 영혼 속으로 뛰어내렸다. 우리는 부엉이 바위 아래로 달려가 울며 떨어지는 그의 몸을 받는다. 그는 상징이 되어 날아간다.

 

오, 세계는 얼마나 징조로 가득차 있는가. 그가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 옆에는 뱀 바위가, 그리고 그 옆에는 사자 바위가 있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새 부엉이는 어둠을 헤치며 날아오른다. 노무현은 시대의 마지막 어둠을 찢고 뱀의 혓바닥과 싸웠다. 그 옆에 사자가 버티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에 통곡했던 수백만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봉하 마을로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실로 눈부시게 피어나는 이성의 전조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을 하루 앞둔 9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 49재 추모예술제 행사위원회'와 '한국문학평화포럼'이 공동으로 마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전야 추모예술제'에서 김정란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 유성호
김정란

상징 전통 안에서 사자는 대표적인 태양 동물이다. 그것은 주체의 눈부신 각성과 당당한 독립을 의미하는 힘찬 상징이다. 우리의 통곡은 노무현이 몸을 찢으며 맞서 싸웠던 저 밤의 뱀들의 저주를 이겨내는 빛의 포효가 될 것이다. 사자는 어느 날, 뱀을 제압하고 승리의 함성을 지를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몸서리쳐집니다. 구멍가게에 앉아 손녀에게 쭈쭈바를 사주시면서, 행여 손녀의 손이 차가울까 봐 휴지로 돌돌 말아서 건네주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착한 사람을, 그 선한 미소와 어린아이같은 천진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습니다.

 

당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우리가 이제야 당신의 찢어진 몸을 쓰다듬고, 당신의 부서진 뼈를 맞추어 드립니다. 우리가 내장까지 떨리는 통곡으로 당신의 피를 씻어 드립니다. 다시는 몸을 받지 마소서. 다시는 사악한 자들이 당신을 물어뜯지 못하도록 윤회의 사슬 안으로 돌아오지 마소서.

 

굿바이 마이 캡틴, 나의 소중한 친구여. 당신과 한 시대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혼 안에 영원히 오는 분으로 살아 계십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은 나의 캡틴, 평안하소서, 옴 샨티 샨티.'

덧붙이는 글 | 김정란 기자는 시인이자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입니다.



    2009년 7월 10일 안장식(49재)


   언젠가 사람사는 세상이 오면, 외쳐주세요.

    "야 ~ 기분 좋다"
 
   그때 우리가 당신께 외치겠습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며   (이해찬 / 2009-07-10)

서거 49일만에 우리는 고인의 유골을 부엉이 바위 아래 안장했습니다.
묻었습니다.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비석을 세웠습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비보를 처음 듣고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사실이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눈을 감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내다보는 하늘은 참으로 푸르고 푸르렀습니다. 흐르는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제가 고인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검찰 출두 이틀 전인 4월 28일입니다.
인사드리러 봉하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두어 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가지 말씀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 총리, 앞으로는 우리 집에 오시지 마세요. 다쳐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당하고 있어요. 오시지 마세요.....세상에 아무도 안 믿겠지만 정말 몰랐어요."

저 는 고인을 모시고 지난 25년 동안 민주화 운동과 현실 정치를 함께 했습니다. 25년 동안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거짓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천성이 그런 분이셨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에 갇혀있는 분이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이야기들, 갖은 수모를 6개월 동안이나 당하셨습니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중국 고사성어에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증삼이라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도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였다고 말하기 시작하다가 죽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증삼의 어머니 마저도 그렇게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온갖 신문, 방송에서 필객, 논객,  정치인들이 하이에나처럼 달겨들어 증삼살인에 가담했습니다. 갖가지 교언(巧言)을 동원하여 난자하였습니다.

홍위병들의 인민재판 보다 훨씬 치졸하지만 가혹했습니다. 고인은 옥죄어오는 그물을 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택했습니다.
몸을 던져 사랑하는 세상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하셨습니다. 증삼살인에 살신성인으로 맞섰습니다.
그렇게 진실을 지키고자 하셨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고인의 서거를 조광조의 기묘사화, 실학파에 대한 신유박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을 던져 일깨워 주었습니다. 500만 조문행렬이 고인을 부활시켰습니다. 두 시간, 세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조문행렬의 마음속에 노무현이 부활하였습니다.

부활! 그리스어로 부활은 '봉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죽었던 것이 되살아 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날 봉기해서 사태를 역전시켜 역사를 주도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기득권 질서와 정면으로 맞서 역전시킨다는 '부활'. 그래 그것입니다.
인간 노무현은 우리들 마음에 큰 비석을 세우게 했습니다.
증삼살인에 가담한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지만 잊지 않도록 했습니다.

정 치인 노무현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망국적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몸을 던졌습니다. 전국에서 찾아 오시는 조문행렬이 그 뜻을 가슴속에 담았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에 기초한 민주적 위민국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권과 권위주의를 버리고 분권과 균형발전을 이루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속에 그 가치가 녹아들었습니다.
노무현은 부활하고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고인이 추구했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 날았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역사라고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가치를 찾고 현실에서 방법을 찾습니다. 고인에게서 가치를 배우고 이 땅에 살아있는 우리가 방법을 찾을 때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언제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입니다. 삶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1년 반만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민주, 민생, 평화 모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 말기에 보였던 포악과 패륜 그리고 거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폭력과 공포와 만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연 봉 2천만원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돈을 '4대강 살리기'에 쏟아 붓느라 서민들의 의료급여, 장애인의 수당마저 줄이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이면서 강을 살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50년 만에 뚫은 남북관계도 다시금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현 정부가 국민의 믿음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의 말은 사람(人)의 말(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신(不信)입니다. 말은 발음과 의미가 갖아야 하는데 입과 마음이 다르니 불신입니다.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좌절하면 앞으로 3년 반동안 더 많은 것을 잃습니다.

현 정부의 역주행 때문에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와 시간을 잃습니다. 우리가 지치고 포기하면 우리 다음 세대의 꿈과 자유와 생명을 잃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우리의 자존심과 양심마저 잃게 됩니다. 우리가 또 속고 현혹당하면 눈과 귀를 잃고 마음마저 잃게 됩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국민의 마음 속에 길이 있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민심이 바뀌고 있습니다. 더 할 수 없이 소중한 가치인 자유와 인격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지역주의에 무의식적으로 물들어 있던 민심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거짓 공약에 속았다는 자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려 하지만 국민들은 소리치고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지를 직감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잘못 선택한 정권이 민주, 민생, 평화를 어떻게 유린하는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불량정권의 유통기한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현 정권을 1년 반 겪으면서 서로 손잡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며 연대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선거 때마다 투표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정치가 왜 중요하고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다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증삼살인-살신성인-부활-연대-승리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바람이 분다'. 이것이 추모제의 깃발입니다.


2009년 7월 10일
이 해 찬

출처 : 사람사는 세상
본 글은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스크랩 한 것으로서 저작권은 각 저작권자에게 있으며 문제를 제기할시 즉시 삭제하거나 비공개 조치를 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  쏘울  -

출처 : 사람사는 세상 - “비석은 검이불루하게, 안장시설은 화이불치하게”

“비석은 검이불루하게, 안장시설은 화이불치하게”


- [기자회견] 노무현 대통령님 안장 및 묘역 계획 설명


o 전국 8도 각지에서 기증된 다양한 석재로 묘역 조성
o ‘참여정부 5년의 기록’ 및 추모영상 DVD 부장품으로
o 묘표는 지관스님 글씨로, 어록은 신영복 교수 글씨로


유홍준 비석건립위원장은 7월 7일 오후2시 봉하마을 회관에서 기자회견(아래 사진)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님 안장과 묘역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밝혔습니다.

유 위원장은 비석과 안장시설의 설치에 대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로 그 미학을 대신했습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시조 온조왕 15년 춘정월(春正月)에 새로 궁실을 지었는데 이같이 표현했다고 합니다.


제작자와 지역단체, 안장시설 재료 산지기증


먼저 대통령님 묘역과 비석에는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국정철학에 맞추어 전국 8도의 물산이 고루 사용됩니다. 이들은 모두 제작자나 지역 자치단체, 시민단체 등의 산지 기증으로 제작됩니다.

안 장시설의 경우 석함은 충남 보령 남포오석(삼부석재 남기택), 연꽃석함은 전북 익산 황등석(금강조각 윤태중), 유골이 들어가는 백자합은 경기 성남 백자가마(도예가 박영숙), 방습 참숯은 강원 횡성, 모래는 경남 김해 화포천에서 채취된 것입니다.

묘역을 중심으로 바닥에 설치할 두께 12cm 정도의 넓적한 박석도 제주도 현무암(제주4.3유족회), 강화도 박석(강화군), 남해 청석(남해군), 황해도 해주 쑥돌(창림통상 정소진) 등 전국 각지의 돌이 사용됩니다.

대통령님 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예법에 따르고, 국가원수의 묘소로써 예를 갖춰 진행됩니다. 유골 봉안은 부부 합장묘의 예에 따라 공간을 확보하고 개폐구조를 갖추기로 했습니다.

유 골을 모실 백자합(가장 오른쪽/직경 30cm, 높이 25cm)은 연꽃 모양의 석합(가운데/직영 50cm, 높이 50cm)에 담아 그 석합을 대리석 석함(가로 124cm, 세로 68cm, 높이 79cm)에 봉안하고 지하에 매장하는 방식으로 안장합니다.

석함에는 부장물로 참여정부 국정홍보처가 제작한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라는 5부작 다큐멘터리 DVD와 대통령님 일대기와 추모영상을 담은 DVD가 들어갑니다. 석함 덮개돌에는 한자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2009’라고 새깁니다. 이 글씨는 묘표를 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썼습니다.

이 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대통령님 어록이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글씨로 새겨진 강판을 덮습니다. 그 위에 충남 부여의 석산에서 발굴한 두께 40cm, 가로 세로 각각 2m 정도의 화강암 재질 너락바위 형태 비석을 봉분처럼 올리게 됩니다. 이 비석에는 앞서 발표한 대로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겨졌습니다.

묘 역에서 봉화산 사자바위 방면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는 길이 30m, 높이 3m, 두께 30cm의 철골 강판을 세워 ‘벽’ 역할을 하도록 하고, 주변 경관과 모역을 분할하였습니다. 또 조명등이 설치된 9m 높이의 국기게양대를 설치하여 묘역을 비출 예정입니다.


유홍준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은 미적분의 해법”


다음은 유홍준 비석건립위원장의 모두 발언입니다.

1. 진작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49재 전에 일을 마쳐야 해서 이제야 마련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유족과 전례위원, 그리고 기자분들에게 그간의 경과와 오늘 이후 지하에 안장될 모든 시설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3. 노무현 前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을 당부하셨고, 영부인께서 그 건립을 제게 위임하셨을 때 사람들은 “아주 작은 1차 방정식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그깟 일에 무슨 위원회냐“고 꾸짖기도 하였습니다.

4. 그러나 화장된 유골을 산골하지 않고 매장을 하되 봉분은 쓰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비석건립은 안장 시설과 함께 이뤄져야 하고, 대통령님 유언의 “아주 작은 비석”이란 검소하게 하라는 뜻인데 전직 국가원수의 묘역이고 비석이니 누추해 보여서는 안 되고 예기치 못한 조문 열기에서 보여준 국민의 뜻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니, 이는 3차 방정식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전례(前例)가 하나도 없지만 예법(禮法)에서 어긋나지 않고 또, 전통(伝統)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나아가 옛날보다 더 잘 해야 하는 미적분의 문제였습니다.


※ 미적분의 해법 : 밥 먹으면서도 고민... 고민...

① 기본은 비석이다. 어찌됐든 돌이다.
②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는다면 = 고인돌(支石墓)
③ 아주 작아야 한다. 북방식(北方式)이 아닌 남방식(南方式)
④ 그렇다면 창녕 유리 고인돌(메주덩이)가 아닌 고창 상갑리 고인돌(너럭바위)이다.
⑤ 그래서 짜장면 먹다가 떠올라 이렇게 스케치했다.

※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승효상씨 이로재건축연구소로 뛰어갔더니 그는 다음 화면처럼 구상하고 있었다. 상수(上手)는 달랐다. 나는 고인돌 옆에 아주 작은 비석을 생각했으나 승효상씨는 덮개돌이 바로 비석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했다.

 ■ 부장품 : 다큐멘터리 5부작 “참여정부 5년의 기록”

 <제1부> 약속, 시대의 책임 (정치)
 <제2부> 구시대의 막내에서 새시대의 맏이로 (경제, 사회)
 <제3부> 미래는 꿈으로 만들어진다 (통일, 외교, 안보)
 <제4부> [내가 만난 노무현] “그와 함께 한 시대를 건넜다”
 <제5부>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 “시대는 단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출처 : 사람사는 세상
             원문출처 : 오마이뉴스 노무현 묘역에 남북 팔도 돌·모래 깔린다

노무현 묘역에 남북 팔도 돌·모래 깔린다
'아주작은비석 건립위',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묘역 설명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陊, 검이불루 화이불치)"(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15년(BC.4)조에 새 궁실을 표현한 말).

제 16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과 비석 제작을 맡았던 유홍준 아주작은비석 건립위 위원장(전 문화재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대해 이같은 '미학'을 부여했다. 그는 "지상의 비석은 검이불루하게, 지하의 안장시설은 화이불치하게 했다"고 말했다.

 

  
충남 부여에서 온 돌로, 노무현 대통령의 유골함을 안장한 뒤 맨 위에 고인돌 형식으로 놓이는 비석으로,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윤성효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가운데 천조각으로 덮어져 있는 부분이 유골함이 안장될 곳이며 뒤에 검정색 가림막이 보이고 위쪽에 봉화산 사자바위가 보인다.
ⓒ 윤성효
노무현

 


노 대통령의 묘역과 비석에는 남·북 팔도의 대표적인 돌과 모래가 사용되었다. 건립위는 "노 대통령의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국정철학에 맞추어 묘역 조성과 안장 시설에 전국의 물산이 고루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안 장시설부터 보면, 석함은 충남 보령 남포오석(남부석재 남기택 기증), 연꽃석합은 전북 익산 황등석(금강조각 윤대중 기증), 유골이 들어가는 백자합은 경기 성남 백자가마(박영숙 기증), 습기 방지를 위해 들어가는 참숯은 강원도 횡성, 모래는 경상도 화포천에서 갖고 온 것이다.

바닥에 놓인 박석도 전국 각지에서 왔다. 제주 현무암(4.3유족회 기증)과 강화도 박석(강화군 기증), 남해 청석(남해군 기증), 북한 황해도 해주 쑥돌(애석)이 사용되었다. 해주 쑥돌은 창림통상 정소진 대표가 중국 상하이를 통해 수입한 돌이다.

이제 생산되지 않는 돌도 많은데, 금강조각 윤대중 대표는 15년 전 작품하기 위해 소장하고 있던 돌을 내놓았고, 남해군도 보관하고 있던 돌을 내놓았다. 유홍준 위원장은 "전국 8도의 돌과 모래 등 물산들이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묘역 비석 아래에 새겨진 어록.
ⓒ 윤성효
노무현
  
유홍준 아주작은비석건립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후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유골함 등의 실물을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노무현

 

유홍준 위원장 "밥 먹으면서도 고민했다"

건 립위는 7일 오후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의 묘역 조성과 안장방식 등에 대해 설명했다. 봉하마을회관에서 열린 설명회에는 유홍준 위원장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건축가 승효상씨 등이 참석했다. 유 위원장은 봉화산 사자바위 기슭 아래에 있는 묘역으로 이동해 설명하기도 했다.

 

  
유홍준 아주작은비석건립위원회 위원장이 7일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유골함 덮개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노무현

유 위원장은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안장될 모든 시설물을 공개한다"면서 "노 전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아주 작은 비석' 건립을 권양숙 여사께서 제게 위임했을 때, 사람들은 '아주 작은 1차 방정식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그깐 일에 무슨 위원회냐고 꾸짖기도 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화장된 유골을 산골하지 않고 매장하되 봉분을 쓰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비석 건립은 안장시설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유언의 '아주 작은'이란 검소하게 하라는 뜻인데, 전직 국가원수의 묘역이고 비석이니 누추해 보여서는 안되고, 예기치 못한 조문 열기에서 보여준 국민의 뜻은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크니 이는 3차방정식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이전 전례가 하나도 없지만, 예법에서 어긋나지 않고 또 전통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나아가 옛날보다 잘해야 하는 미적분 문제"라며 "미적분의 해법을 찾기 위해 밥 먹으면서도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 는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그 위에 돌을 얹는다면 고인돌이라 생각했고, 아주 작아야 한다면 북방식이 아니라 남방식이어야 하고, 그렇다면 메주덩이 모양인 창녕 유리 고인돌이 아닌 너럭바위 모양의 고창 상갑리 고인돌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자장면 먹다가 떠올라 스케치했다"고 덧붙였다.

비문에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쓴 것에 대해, 그는 "약력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의 비석에도 이력을 붙이지 않았던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 는 "바로셀로나 무명용사의 비와 파르테논신전, 우리나라 근정전 등 세계 40여 곳의 시설물을 조사해 참고했다"고 밝혔다. 묘역 주변 바닥에 놓인 박석 15개에 추모객들이 남긴 글을 새겨 놓았으며, 안도현 시인과 공선옥 작가가 쓴 '헌시'의 일부도 새겨 놓았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건립위원인 황지우 시인한테 애초에 비문을 부탁하려고 하니, 그는 절대 비문을 우리가 쓰면 안 된다고 했다"면서 "비문을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추모 기간에 나온 일반 국민들이 쓴 글보다는 못할 것이기에 추모의 글을 박석에 새겼다"고 말했다.

 

  
봉하마을에 조성된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으로, 노 대통령의 유골함이 안장될 곳은 지금 천조각으로 덮여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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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 예법 따라

노 대통령의 묘소 안장은 전통적인 화장 예법에 따른다. 또 국가원수 묘소로서 예를 갖추었으며, 건립위는 박명근 동국대 강사와 윤용이 명지대 교수한테 자문을 받기도 했다.

유골 봉안은 부부 합장묘의 예에 따라 공간을 확보해 놓았으며, 열고 닫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앞으로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별세하면 노 대통령 유골함 옆에 같이 안장하게 된다.

덮 개돌에는 한자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1946~2009)'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이 글씨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쓴 것이다. 유골함이 들어갈 연꽃석합은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디자인하고, 금강조각 윤태중 대표가 제작했다.

유골이 들어갈 백자합은 도예가 박영숙씨가 제작했다. 박영숙씨는 청와대 외빈 접대용 그릇을 만들기도 한 도예가다. 백자 지석에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2009'이라고 새겨넣었다.

묘 역에는 9m 높이의 국기게양대가 설치되는데, 그 속에 잘 보이지 않게 밤에도 불빛을 비추는 조명장치가 들어간다. 노 대통령의 유골을 안장할 때 부장품도 들어가는데, 건립위는 유족과 논의해 2개의 DVD를 넣기로 했다. 부장품으로 들어가는 DVD에는 참여정부 5년의 기록과 추모자료 영상이 담겨있다.

유홍준 위원장은 "세계 건축사에 내놓아도 자신있다는 생각으로 했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국가의 묘역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만든 묘역이 앞으로 국가사적이 되고 세계 건축가들이 와서 둘러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홍준 '아주작은비석 건립이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후 봉하마을회관에서 노무현 대통령 묘역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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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쓴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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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조성된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주변 박석에 새겨진 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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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조성된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주변 박석에 새겨진 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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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조성된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주변 박석에 새겨진 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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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조성된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주변 박석에 새겨진 글.
ⓒ 윤성효
노무현

어제 일요일(2009.07.05) 사람사는 세상에 노무현 대통령 미공개 동영상이 공개 되었더군요.
이제 49재 안장식을 며칠 앞두고 있는 싯점에서 다시금 그의 진면목을 알수 있는 영상들이 더욱더 그를 생각나게 합니다.

출처 :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대통령님 미공개 동영상 첫 공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관하실 분은 본 "미공개 동영상 다운링크 펼쳐보기"의 링크들을 플래시겟으로 받으면 됩니다.


추가 관련글 참조 : 노무현 대통령 동영상 "영원한 나의 대통령(동영상 모음)"


이 사진과 글은 아고라에서 퍼온 것입니다.    이 한장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나네요.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7일 오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 손을 맞잡고 트랩을 내려오고 있다.  /박창기/정치/국제/   2006.5.7 (울란바토르=연합뉴스) changki@yna.co.kr
사진의 원출처 : 연합뉴스 노대통령 울란바토르 도착



글 출처 아고라 : 알뜰주부 권양숙 여사님의 찢어진 옷자락


꿀떡꿀떡님이 올리신 '노통과 권양숙여사님의 러브러브모드' 사진들을 보다가...
덧글에 잠보님이 남기신 글 보고 발견한 사진입니다.
그런데 다시 그 사진을 보니, 왜 이렇게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인 권여사님의 옷자락 안쪽이 얼마나 오래 그 옷을 입으셨으면 헤지다 못해 찢어져 있더군요.
아마도 안쪽이니 별 문제 없을거다 생각해 그 옷을 입으신 모양입니다.
바람이 그 속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말았네요...

발꼬락에 다이아반지 끼고 들어오다 걸리는 어떤 여자와는 비교도 안되는... 검소함
헤르메스인지 뭔지 하는 1천만원짜리 핸드백 메고, 백화점 다니면서 된장냄새 피우는 어떤 여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권양숙 여사님만의 아름다움...

정말 우리는 행복한 5년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님은 보내드리더라도 권양숙 여사님만은 꼭 우리가 지켜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습니다.

사랑합니다. 권양숙 여사님~~~~




아래 소개글에 있는 각각의 사진을 클릭하면 동영상을 볼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시킨 참모 생각에 눈물짓고,
자전거에 손녀 태우고 들판 달리며 함박웃음 짓고,
우는 아이, 불편한 아이 어르고 달래고 놀아주고…

영결식 전 미공개 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이제껏 공개되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님 동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이번에 공개하는 동영상은 모두 지난해 촬영한 것입니다.

퇴임 직전 청와대 관저에서 안희정씨 출판기념회에 보낼 축하 영상메시지를 촬영하는 장면을 빼곤 모두 봉하마을에서의 생전 모습입니다.

전직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친근하고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인간적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1. 2008년 1월 오랜 참모였던 안희정씨가 <담금질>이란 책을 내며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대통령님 참석을 요청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워지자, 대신 축하영상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촬영 도중 대통령은 아무 해준 것도 없이 고생만 시킨 그를 생각하며 밀려오는 회한과 미안함에 끝내 흐르는 눈물을 가누지 못합니다.

안 희정씨도 영상을 받아 보고 눈물 지으며, 결국 출판기념식장에서 이를 틀지 않았습니다. 한없이 인간적이셨던 대통령님의 모습을 자신의 출판기념회에 상영하는 것은 참모로서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2008. 1. 8)

2.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 가운데 아이들을 데려오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대통령은 아이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습니다.

부모들과 함께 장군차를 심으러 온 어린이들에게 일일이 신경을 썼는데 무심코 한 어린이를 지나쳤습니다. 아이가 서러움에 우니 달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습니다. (2008. 4. 6)

또, 기념사진을 찍는데 낯을 가리며 한사코 안 찍겠다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 찾아온 아이들과 악수를 하며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수그리는 모습, 촬영을 하기 위해 무릎에 앉힌 여자 아이의 치마를 매만져주는 모습은 자상한 할아버지 그대로입니다.

3.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불편하지 않은 아이들을 같은 반으로 편성해 가르치는 ‘마산 숲속자람터’ 아이들이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비가 와서 마을회관에 자리를 잡고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있어 주위가 산만하고 정신이 없지만 도리어 아이들을 달래가며 도닥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2008.04.23)
4. 방문객을 맞지 않는 월요일. 대통령에겐 휴일입니다. 권양숙 여사와 함께 마을로 마실 나갑니다. 마을 주민들이 차린 노점에서 식혜도 사먹고, 지나가는 방문객들과 인사도 나누는 모습입니다. (2008.08.25)
5. 귀향해서 맞는 첫 생신.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상을 차렸습니다.

주민들의 청에 못 이겨 내외분이 함께 축하 노래를 듣고 샴페인을 터뜨리고 케이크를 자르지만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2008.09.05)

6. 하루 몇 번씩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일이 대통령으로선 고역인데도 불원천리 달려온 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한 가족이 대선 때 선거포스터를 소중히 간직하다 선물로 전합니다. (2008. 8.15) 내일이 입대라고 친구들과 봉하마을을 찾은 젊은이에게 기념사진도 찍어주고 군 생활 잘하라고 격려합니다. (2008.11.30) 포즈를 취해달라는 방문객들의 요구에 하트모양을 그려 보이는 모습엔 천진함이 가득합니다. (2008. 4. 6)

7. 자원봉사차 내려온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 직접 뜬 자수를 선물합니다. 자수를 뜨다 손을 다쳤다고 하자 다른 손을 잡아주며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08.05.04)
8. 대통령이 방문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도중 끔찍이도 아끼던 첫 손녀 서은이가 계속 주변을 얼쩡거립니다. 아예 인사를 시키자 누군가 한 분이 음료수를 건넵니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방문객들의 만남. 고인이 꿈꿨던 사람사는 세상의 향취인 것 같습니다. 외손녀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들판을 달리는 모습도 정겹습니다.

9. 한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봉하마을을 찾아 대통령에게 헬멧도 씌워드리고 선글라스도 끼워드립니다.

어색해 하면서도 그들과 자전거로 들판을 달리는 모습이 시원합니다. (2008.11.30)

10. 재중동포들이 봉하마을을 찾아 인사를 합니다.

살던 곳을 떠나 한국으로 와서 기구한 사연을 한 자락씩 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대통령은 재임 때부터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들의 인사말과 표정에 대통령의 따뜻한 마음이 투영돼 있습니다. (2008.09.27)

11.마을 주민들과 함께 김해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한 대통령님. 사회자가 예고 없이 노래를 시킵니다.

관객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뽕짝’(트로트)을 부르는 모습은 그 세대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영락없는 소탈한 촌부입니다. (2008.05.06)



※ 이번 영상은 노무현 대통령님 49재와 안장식 등 마지막 장례 절차의 진행을 담당하고 있는 '봉하 전례위원회'(위원장 이병완 前 청와대 비서실장)에서 공개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2007년 9월과 10월 청와대에서 3일간 13시간에 걸쳐 노무현 대통령을 심층 인터뷰하고 연재한 글을 읽노라면,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그의 생각과 철학과 인간성과 그가 지키려했던 사람사는 세상에 대해 고뇌하는 그를 읽을 수 있다.

이제 그를 기록하고 연구한 출판물을 통해, 세상을 향해 그가 설파하고 만들려 했던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철학을 공부하자 그리고 노무현 공부를 하다 보면 노무현과 마주칠 수도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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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로 이어갑니다
[맺는말] 연재 인물연구 노무현을 일단락하며


<오마이뉴스>를 통한 '인물연구 노무현' 연재는 여기에서 일단 쉬겠습니다. 대신 단행본으로 이어집니다.


여 기서 연재된 것을 보완·재구성하고 '조중동과의 싸움 1,2', '이라크 파병', '한미FTA', '예비정치인에게', '작은비석 특강', '진보의 미래' 등 새로운 꼭지들을 대폭 추가해서 단행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만들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저작권자)는 노무현(인터뷰)/오연호(글)입니다. 이 책의 수익금 중 일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사업과 관련한 뜻있는 사업에 쓰일 예정입니다. 아마도 6일(월)부터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연재된 글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내놓기로 결심한 것은 '인물연구 노무현'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 기사를 107만 명이 읽었는가 하면, 눈물로 잘 읽었다, 너무 의미 있는 글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만나게 됐다는 댓글이 숱하게 달렸습니다. 그들 중에는 꼭 책으로 내달라 노무현 공부의 교과서로 삼겠다는 바람을 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의 재발견, 노무현 이어달리기는 한순간의 눈물로 이뤄질 수 없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에 눈물 뿌렸던 이들이 노무현 이어달리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이 책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에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출처 : 노무현 공부법,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됩시다 - 오마이뉴스



하지 못한 추도사를 대신하여

“김 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당일 끝내 못한 추도사. 김 대통령님께서 그 추도사를 대신한 추모의 말씀을 3일 보내오셨습니다. 동교동에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신간 추천사 형식을 통해 보내주신 추모의 메시지를 공개합니다.” <관리자 주>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나 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 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 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 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 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 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 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 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 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 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목   차
추천사 김대중 전 대통령
머리말 여섯 명의 노무현을 다시 만나다

1장 바보를 보내다 스무 살 희망 씨에게| 바보 노무현은 어디로 갔나요
사랑과 분노|자살!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던 이가 왜

2장 노무현은 왜?지지자에 대한 예의|나 때문에 힘들었지요?
대통령의 자만|대연정 수류탄, 왜 던졌나
대통령의 반론편지|패배는 있지만 패배주의는 없습니다
권력 분산, 자의냐 타의냐|청와대에서 걸어 나가고 싶다
말투의 뿌리|봉쇄되면 절박해집니다

3장 바보가 쓴 정치학 교과서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나|정의가 패배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노무현과 김대중|역사 이어달리기, 질투는 없었다
조중동과의 싸움 (1)|악연의 시작, 〈조선〉 배달소년 돕다
조중동과의 싸움 (2)|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아간다
내 마음속의 후계자|승부사, 부드러움을 부러워하다
북핵 해법|9·19 속에 답이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잘못된 선택, 그러나 불가피했다
한미관계와 FTA| 미국 콤플렉스 이제 그만
예비 정치인에게|흙탕물에 들어갈 용기 있습니까

4장 진보의 미래민주주의의 위기|바보의 하소연, 왜 이명박입니까
진보에 묻다|나의 당선, 기적입니까 당연입니까
작은 비석 특강:결국 시민이다|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하라
구시대의 마지막 청소부|검찰 칼끝 보며 진보의 미래 묻다
노무현 공부법|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됩시다


고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연보



바보 노무현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


오마이 뉴스 대표기자 오연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최근의 철학과 생각을 담았다. 오연호가 3일 동안 만난 바보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사상가 노무현, 인간 노무현 등 다각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명한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기자와 나눈
3일간의 심층 대화

“대화는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때론 점심을 같이 하면서 이뤄졌다.
나는 그 3일간의 인터뷰에서
여섯 명의 노무현을 만났다.
바보 노무현에서 사상가 노무현까지.”


1.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최근 육성 그대로를 정리한 최초의 책 : 지은이 노무현(인터뷰)/오연호(글)
이 책의 지은이는 노무현(인터뷰)/오연호(글)입니다. 이 책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2007년 가을 청와대에서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을 3일간 인터뷰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습니다. 딱딱한 인터뷰 형식을 떠나 인간 노무현의 깊은 심경을 생생히 밝힌 솔직한 토로입니다. 이 책의 수익금 중 일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사업과 관련한 뜻있는 사업에 쓰여질 예정입니다.

정치인 노무현이 언론과 가진 마지막 심층 인터뷰를 담다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의 특징 1


노 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내려간 이후 언론과의 심층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2007년 가을 오연호 대표기자와 [인물연구 노무현]을 위한 3일간의 인터뷰 이후 한두 텔레비전 다큐프로그램에 등장하긴 했지만, 정치학자들과의 대담이 있었지만, 언론과의 본격 인터뷰는 없었습니다. 이 책에 담겨있는, 2007년 가을에 했던 그 인터뷰는 정치인 노무현이 언론과 가진 마지막 심층 인터뷰였던 것입니다.


여섯 명의 노무현을 만나다 -노무현 공부의 정본(定本)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의 특징 2


노 무현 전 대통령과 오연호 대표기자 나눈 3일간의 인터뷰는 [인물연구 노무현]을 전제로 하여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여섯 명의 노무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보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민주주의 연구가 노무현, 사상가 노무현, 인간 노무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나온 책들이 주로 추모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 책은 노무현의 말을 통해 노무현을 본격 이해할 수 있는, 노무현 공부의 정본(定本)이 되는 책입니다.

. 노무현에 빚진 나,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책에 그 답이 있습니다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의 특징 3


봉 하마을에 세워지는 ‘아주 작은 비석’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 집니다. 왜 그 문장이 선정되었을까?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애증(愛憎)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노무현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요즘 묻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책을 읽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 때 하지 못한 추도사를 이 책 추천사로 대신하다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의 특징 4


이 책의 추천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정부측의 반대로 추도사를 하지 못했던 그는 “하지 못한 추도사를 대신하여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다”고 했습니다. 15매 분량의 이 추천사에서 고인을 “쾌남아”라 지칭하고 “우리가 깨어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래 추천사 전문 참조)

수백만 네티즌이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며 읽은 글을 담다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의 특징 5


이 책의 절반 가량은 오연호 대표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인물연구 노무현]을 보완, 재구성해서 담았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독자들의 성원은 뜨거웠습니다. 한 기사를 107만 명이 읽었는가 하면, “그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잃어버린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만나게 됐다.”는 댓글이 숱하게 달렸습니다. 그들 중에는 “꼭 책으로 내달라.”, “노무현 공부의 교과서로 쓰겠다.”는 바람을 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는 인터넷에 연재되지 않았던 새로운 글도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

글쓴이 오연호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구성과 핵심 내용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2007년 가을, 퇴임을 6개월여 앞둔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3일간 만났다. 9월 2일, 9월 16일, 10월 20일, 한 번에 네다섯 시간씩, 때론 점심을 함께하면서.
나는 그 3일간의 대화에서 여섯 명의 노무현을 만났다. 바보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정치학자 노무현, 사상가 노무현, 인간 노무현.

1장은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그래서 세상에 분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누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그리고 그는 죽어서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2 장은 ‘노무현은 왜?’에 답하고 있다.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개혁 성향의 젊은이와 누리꾼은 그에 대해 애증(愛憎)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에게 물었다. 왜 그 정도밖에 못하십니까? 이 장은 그의 지지자들이 왜 애(愛)와 함께 증(憎)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계기가 된 사안들에 대해 노 대통령 스스로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를 담고 있다.

3 장은 정치학자 노무현, 대통령학 학자 노무현이 들려주는 정치학 강의다. 나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때때로 조용하게 그의 강의만 듣고 있는 수강생이 되었다. 그는 퇴임 후 정치학 교과서를 만들고 정치학 강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는지, 왜 보수언론과 맞섰는지, 정치인이 갖춰야 할 기본과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를 설파했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남북정상회담, 후계자 문제 등의 사례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론, 지도자론을 강의했다.

4장에서는 사상가 노무현, 민주주의 연구가 노무현을 만나게 된다. 퇴임 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 대통령의 관심은 현실정치의 저 너머에 있는 역사, 철학의 영역까지 닿아 있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민은 누구인가, 민심이란 무엇인가, 먹고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최종적으로 그는 제대로 먹고살기 위해 서로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를 연구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노선을 ‘합리적 진보’라 부르며 그것의 성과와 한계를 재조명했다. 그리고 진보의 미래를 설계했다.

출처 : 인터파크
오늘 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추가했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왔습니다.
진작에 그런 짓을 않했으면 원성을 듣지 않았을텐데 ..... 참으로 답답합니다.


현충원 공지글에 첨부된 사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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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만 부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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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 사진만 부재중이어서 요며칠 관심이 집중되었고, 여러분들의 호응에 힘입어서 각 메스컴에 기사화 되고 또 현충원에서도 급하게 오늘(2009년 6월 16일)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과 사진을 새로 제작하여 정위치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 제기가 중요한것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사후에 제대로 조치가 되는가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확인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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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문제 제기에 대한 국립서울현충원의 조치 글이 아래와 같이 올라왔습니다.


위 조치 공지 내용에 대해 현충원 참여게시판에는 매우 예리한 아래 글도 있군요.


마침 금주 토요일인 6월 20일에 호국음악회가 열린다는군요.
우리 다함께 노무현 대통령 사진도 알현도 하고 현장 점검도 확실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무료 음악회 감상하면 어떨지요?
절대로 음악감상이 목적이 아닌거 여러분 잘 아시지요?



실은 위에 호국 음악회에 참여하기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 우리들 눈으로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 되겠고, 그 다음은 아래 보시는 "다시 바람이 분다"에 참여하셔서 다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금 새겨보자는 뜻입니다.

본 글은 증거자료 확보차원에서 아고라 "뵤리"님이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스크랩한것이다.

IE 브라우저를 사용시 아래쪽에 동영상이 곧바로 보이지만, 파이어폭스 브라우저를 사용시는 동영상이 곧바로 플레이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동영상을 첨부 파일로 올려둔다.






문제의 현충원 사진과 영상입니다. (원문 바로가기)


직접 가보기 힘든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 잠입(?)해서 촬영해 왔습니다..;;

내용은 이미 다들 알고 계실 것이라 길게 쓰진 않겠구요, 제 블로그에 올린 내용을 카피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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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 게시판을 보다가 또 기상천외한 글이 올라와 있길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국립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전 대통령만 빠져 있더라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냥 대통령 사진 전시관이 아니라 "통일을 향한 노력의 발자취"라는 전시물 중에 유독 노통것만 없더라는 것이다. 시간상 아직 제작이 안되었다고 보기엔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은 있다는 것을 해명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수 많은 네티즌들이 항의 글을 올리고 전화를 하자 사이트 가입과 전화가 장시간 불통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물론 나도 전화를 해보았다. 전화번호는 직통 02-826-6251 (전시관 담당) 이다.

담당자는 자리를 비웠다며, 현재 관련해서 논의중이고, 리모델링 계획중이라 자세한 답변은 힘들다고 했다.

 

다른 네티즌의 경우엔, '공간이 없어서 전시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현충원의 공식입장글이 다음 아고라와 현충원 사이트에 올라갔다. 아래와 같다.

 

http://www.snmb.mil.kr/snc_2009/web/publish/notice_board/board_view.jsp?bbs=bbs1&pg=0&seq=815&sTop=2&sLeft=1 

 

 

안녕하세요

국립서울현충원 위훈선양팀장입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대한 고객님의 의견에 우선 감사드립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금년부터 국민들의 나라사랑 정신 고취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의 일환으로 사진전시관에 대한 사용용도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통일을 향한 노력의 발자취'와 '통일정책' 코너는 사진전시관의 운영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사진전시관 사용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라사랑' 의 메카로서 더욱 노력하는 국립서울현충원이 되겠습니다.

 

 

참 재미있다. 항의와 질문의 요지는 쏙 비켜난 채 엉뚱한 말만 하고 있다.

 

차라리 '노 전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게시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자체 판단에 의하여...' 어쩌구 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대북정책의 가치와 무게에 대해서만 비교해 보자.

 

박정희때의 '7.4 평화통일남북공동성명'

전두환때의 '민족화합민족통일방안'

노태우때의 '민족자존과통일번영을위한 대통령 특별선언'

김영삼때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천명'

김대중때의 '화해협력정책(일명 햇볕정책)'

노무현때의 ''평화번영정책(포용정책)'

현재 MB의 '상생공영정책'

 

자세한 내용은 검색해서 알아보시라.

설령 정책의 실현에서 그다지 괄목할 만한 성과나 사건이 없었다 하더라도 (물론 국민의정부의 평화정책을 발전적계승하여 NLL(북방한계선)폐지발언, 대북사업&지원 확대(대표적 개성공단) 등의 사건은 있다) 각 공화국별 특징은 기술해야 맞는것 아닌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노통때는 아무 대북정책이 없다든지 아예 대통령이 없었다든지 하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것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아직 제대로 발휘도 못해보았고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명.박은 지난 그 어느 정권보다도 넓은 공간을 할애하여 선전하고 있음을 볼때 왠지 씁쓸해 지는 것이다.

 

일은 바쁘지만, 잠시 랜더링을 걸어 놓고 동작동 현충원에 다녀왔다. 다행히 택시 기본요금 거리에 있다. 성격상 나는 확실하게 자료와 근거를 찾는 스타일인지라 가만히 남의 정보만 믿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오의 현충원은 무지 한산했다.

현충관을 중앙에 두고 오른쪽에 유물전시관, 왼쪽에 문제의 사진전시관이 있다.

사진전시관을 가기 전에 현충관과 유물전시관을 들러 한번 둘러보고 나왔다.

 

내부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스파이처럼 다녀야 했다.

 

= 사진전시관 =

 

 

= 문제의 통일정책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은 제3 전시관이다. 하지만 다른 전시관은 활짝 열려있지만 이곳은 철문으로 닫혀있었다. 완전히 잠긴 것은 아니고 살짝 걸쳐있는 정도이기에 들어가 보았다. 아마도 하도 항의 전화가 쏟아지니 임시로 폐쇄하려 한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점은, 다른 건물에는 안내가 대기중인데 이 전시관에는 안내소도 비어 있었다. 회의중일까...? =

 

 

= 제3전시관의 조금 열린 문. 내부는 소등되어 있다. 들어가서 조명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켰다. 물론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 진입하면 좌측 벽에 이런 제목으로 시작된다. =

 

 

=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별 내용은 없다.=

 

 

= 김대중 정권. 가장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

 

 

= 어라, 그 옆의 공간은 갑자기 다른 내용이다 =

 

 

= 벽을 돌아서면 다른 벽은 이런 판문점의 사진들. 벽에 여유 많구만. =

 

 

= 또 다른 벽은 공동경비구역의 설명 =

 

 

= 또 다른 벽 =

 

 

= 또 다른 벽의 모습. 직접 가서 보니, 공간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말 그대로 변명에 불과한듯 했다. 공간은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

 

 

= 여기도 마찬가지. =

 

 

= 근데, 갑자기 이건 뭐임..?? 사실 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이처럼 이명.박의 내용이 들어서 있다. 공간이 없어서 전시를 하지 못했는데 얘는 어떻게 자리가 난거임,..? 알아본 바로는 2008년 10월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들킬새라 몰래 촬영하는 바람에 충분한 사진은 없지만, 함께 가져간 캠코더의 촬영분으로 이 방안의 모습을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영상이다.

 

 

 

 

현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이 붙을 당시의 현충원의 최고 관리자는 전 현충원장 우국석 공무원이라고 한다. 현재는 다음과 같다.

[現] 국방부 고위공무원(중앙공무원교육원 고위정책과정)

직업 : 공무원(행정공무원)
경력 : 국방부 고위공무원(중앙공무원교육원 고위정책과정)
         국방부 국립서울현충원 원장 고위공무원
         국방부 김사관

http://www.mnd.go.kr:8088/snc_new/web/president/president_03.jsp?sTop=2&sLeft=3

그 전의 현충원장 들.
13대현충원장 강행중 03.7.1 - 05.6.30
14대현충원장 고경석 05.7.1 - 07.7.10

지금의 현충원장은 정진태라는 사람.
 
위의 정보를 제공해 주신 [몽상가]님의 글을 인용해본다.
 
- 저기서 알수 있듯이 전 노무현 대통령 꼐서 당선되신후 현재까지 현충원장이 4명째인데
  아무도 신경을 않쓴것인지 아니면  일부러인지 결제권자인 현충원장이 4번째 현충원장까지
   노통 사진을 뺀 것인지 가슴이 아픕니다.

- 사진에 대해서 한번도 상부나 윗선에서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와도 그런대는 신경을 않쓴다고 하는군요.
 
- 전 현충원장님의 성함을 여쭈어 보니 끝까지 안 알려 주시는 군요.
   뭐 어떠한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웹으로 쉽게 알아 볼수 있으므로
  그냥 거기서 전화 통화를 끊었습니다.
 
================================================================================

전화 통화를 하고 자료를 찾아 보면서 느낀점은 참 가슴이 아프다 입니다.

기득권 이익 집단에 전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고생을 많이하셨겠다라는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찾아 보면서 가장 어이 가 없던 것은 현 현충원장도 마찬가지이지만 현 국방부 소속 공무원이면서

전 현충원장이라는 사람들이 그때 당시 군인을 통솔하는 통솔권자의 사진을 저렇게 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

 

생각지 못했는데 베스트에 올랐네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정성에 다시 한번 놀라고 감사드립니다.

본의아니게 제 블로그의 글을 옮기느라 평어체를 써서 죄송하고

이 정보를 먼저 제기하고 자료들을 남겨주신 ★쏘울님과 외국에 계신데도 어렵게 정보를 주신 몽상가님께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분의 답글에 따르면, 통화 내용으로는 몇일 내로 인쇄해서 붙이겠다고도 했답니다..

 

조금 전에 답글로 올려주신 분의 정보에 의하면,

현충원에 전화했더니 현정권의 대북정책과 맞지않아 뺏다는 답변을 들었고 지금은 실수한것 같아 3개월안에 시정하겠다는 말을했답니다.

 

하도 여러가지 변명을 늘어 놓은 터라 아무것도 믿을게 없지만,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왜 같은 노선의 김대중 정책은 그냥 놔두었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현 정권의 파렴치함과 자가당착의 범죄를 추가하게 되겠지요...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이 정권,

참으로...

더럽습니다...

본 글을 퍼가거나 스크랩할 경우 반드시 출처를 명기해주시고 퍼가는 곳에 대한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 쏘울 -

2009년 6월 13일 현충원에 모셔진 제 부친을 뵈러 갔다가 격은 내용을 보시지요.

노무현 대통령만 없습니다.

왜일까요?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현충관
(마당 한가운데 바닦에 그려진 방향 표시를 보면 정면이 현충관이고 왼쪽이 사진전시관 오른쪽이 유품전시관이다)

사진 전시관

일 제 36년의 항일 투쟁과 6.26 전쟁사에 관한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1층 오른쪽에는 역대 대통령들과 간단한 시대상을 설명하는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그 다음으로 이명박 사진이 자리하고 있지만...유독 노무현 대통령만 없다.

왜일까?

입구에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왜 유독 노무현 대통령만 빼놓았는가?
공간이 부족해서 란다 ㅠ.ㅠ.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라...내가 보건데 공간은 충분한데 무슨 변명을 그따위로 하냐?
전두환, 노태우가 어떤 인간이냐 당신 그거 알어? 버럭 소릴 질렀다.
왜 유독 노무현 대통령만 빼놓은 이유가 뭐냐?
아뭇소리 못하고 그냥 윗선에 건의 하겠단다. 이런 빌어벅을......!

그러고 나서 맞은편에 있는 "유품 전시관"으로 가서 입구를 들어서면서도 도저히 화가 안풀려서 또 다른 근무자에게 물어봤다.
저 앞에 보이는 사진전시관에 왜 노무현 대통령 사진만 없냐?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못한다.
굳이 변명이라고 하는 말이....곧 리모델링할 예정이라 ..........
...그 어떤 말을 해도 변명밖에 안될테니....  라며 말끝을 흐린다.
무슨놈의 변명을 그따위로 하냐?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에 계시던 5년과 퇴임 1년반 동안 적어도 6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너희들이 직무유기를 했다는 것밖에 더있느냐?
더구나 현직 대통령 사진을 새로 걸었다면 왜 직전의 노무현 대통령은 없는것이냐?

입구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근무자에게서 더 이상의 정확한 답변과 이유를 듣는다는게 무의미하게 생각되어.....그렇다면 이곳을 관할하는 부처나 담당 부서 책임자 연락처를 내놔라...라고 하여 전화번호를 받았다.

국립서울현충원 위훈 선양팀 전화 02-815-0625(위훈선양팀 전화번호: 02) 826 - 6251)
이 문제를 분명하게 따져볼참이다.

현장 증거 사진(사진 왼쪽이 입구쪽이고 상단에 김대중 대통령 그다음으로 한참을 건너뛰어 한바뀌 빙 돌아서 오른쪽으로 이명박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현충원 관계자들 변명에 공간이 부족하다, 리모델링중이다 라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다들 보시기에 공간이 부족해보이는지요?
현장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드리기 위해 사진 사이즈를 크게 했습니다. 가능하면 사진에서 마우스 오른쪽 클릭하여 "다른 이름으로 사진저장" 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또는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갑자기 생각난것 하나
그들은 뭐라고 또 변명을 할까?
생존해 있는 사람만 사진을 걸어 놓은 것이다라고 할까?
그래도 그건 안될껄?
액자 형태로 걸어놓은 사진도 아니고 벽지처럼 만들어진 즉, 인쇄되어진 벽보 형태의 연대별 표시가 되어있고 더더구나 최근 몇주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 아닌걸.
두고볼일이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유품전시관" 이다. 즉 사진전시관 맞은편 건물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메모지와 필기구가 없어서 유품전시관 입구 근무자가 자필로 써준 담당부서 전화번호 메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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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립서울현충원 공식입장입니다.
글쓴이  국립서울현충원  이메일  
작성일 2009-06-15 10:35  조회수  5160
첨부파일  


안녕하세요

국립서울현충원 위훈선양팀장입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대한 고객님의 의견에 우선 감사드립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금년부터 국민들의 나라사랑 정신 고취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의 일환으로 사진전시관에 대한 사용용도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통일을 향한 노력의 발자취'와 '통일정책' 코너는 사진전시관의 운영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사진전시관 사용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라사랑' 의 메카로서 더욱 노력하는 국립서울현충원이 되겠습니다.




위에 본문 사안에 대한 문제 제기 이후 상황 진행 별로 작성된 연관 글



추가 : 연관 참고 글
국립서울현충원 사진전시관에 노무현 대통령만 부재중입니다. 그 이후, 현장 방문 확인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여동생과 조카들을 데리고 국립현충원에 모셔진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생전에 계실땐 몰랐는데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신뒤.....자주 보고싶단 생각이 간절해진다.
가슴이 먹먹해질때가 있는가 하면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도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끼는 걸로 보아 아마도 내가 나이들어 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국립현충원 경내를 돌아 아버지를 뵙고 나무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코끝으로 느끼면서 무지개 피어오르는 분수를 보고, 전시관을 돌아 해가 뉘엇해질쯤 노량진 수산 시장을 기웃거려 싱싱한 회한점과 쐬주 한잔을 기울이고 왔다.

노량진 수산시장 어느 식당 입구에 씌여진 글귀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더라.

삶의 문제는 견디고 체험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련을 두려워 말자.      - 헤세 -


동작 전철역에 내려서 현충원으로 가는길

현충원 정문을 들어서며...................

현충문과 무명용사 탑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조카들

조카 희재

수많은 영령들

할아버지께 드릴 꽃다발을 안고.....희재

수많은 영령들과 아버지가 모셔진 충혼당

묵념(누나, 어머니)

잠시 그늘에서의 휴식

까치

비둘기

참새와 놀기

휴식의 공간

오리를 만나다

무지개 뜨는 분수

무지개

현충관
(마당 한가운데 바닦에 그려진 방향 표시를 보면 정면이 현충관이고 왼쪽이 사진전시관 오른쪽이 유품전시관이다)

사진 전시관

일제 36년의 항일 투쟁과 6.26 전쟁사에 관한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1층 오른쪽에는 역대 대통령들과 간단한 시대상을 설명하는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그 다음으로 이명박 사진이 자리하고 있지만...유독 노무현 대통령만 없다.

왜일까?

입구에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왜 유독 노무현 대통령만 빼놓았는가?
공간이 부족해서 란다 ㅠ.ㅠ.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라...내가 보건데 공간은 충분한데 무슨 변명을 그따위로 하냐?
전두환, 노태우가 어떤 인간이냐 당신 그거 알어? 버럭 소릴 질렀다.
왜 유독 노무현 대통령만 빼놓은 이유가 뭐냐?
아뭇소리 못하고 그냥 윗선에 건의 하겠단다. 이런 빌어벅을......!

그러고 나서 맞은편에 있는 "유품 전시관"으로 가서 입구를 들어서면서도 도저히 화가 안풀려서 또 다른 근무자에게 물어봤다.
저 앞에 보이는 사진전시관에 왜 노무현 대통령 사진만 없냐?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못한다.
굳이 변명이라고 하는 말이....곧 리모델링할 예정이라 ..........
...그 어떤 말을 해도 변명밖에 안될테니....  라며 말끝을 흐린다.
무슨놈의 변명을 그따위로 하냐?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에 계시던 5년과 퇴임 1년반 동안 적어도 6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너희들이 직무유기를 했다는 것밖에 더있느냐?
더구나 현직 대통령 사진을 새로 걸었다면 왜 직전의 노무현 대통령은 없는것이냐?

입구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근무자에게서 더 이상의 정확한 답변과 이유를 듣는다는게 무의미하게 생각되어.....그렇다면 이곳을 관할하는 부처나 담당 부서 책임자 연락처를 내놔라...라고 하여 전화번호를 받았다.

국립서울현충원 위훈 선양팀 전화 02-815-0625
이 문제를 분명하게 따져볼참이다.

갑자기 생각난것 하나
그들은 뭐라고 또 변명을 할까?
생존해 있는 사람만 사진을 걸어 놓은 것이다라고 할까?
그래도 그건 안될껄?
액자 형태로 걸어놓은 사진도 아니고 벽지처럼 만들어진 즉, 인쇄되어진 벽보 형태의 연대별 표시가 되어있고 더더구나 최근 몇주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 아닌걸.
두고볼일이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유품전시관" 이다. 즉 사진전시관 맞은편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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