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0일 안장식(49재)


   언젠가 사람사는 세상이 오면, 외쳐주세요.

    "야 ~ 기분 좋다"
 
   그때 우리가 당신께 외치겠습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며   (이해찬 / 2009-07-10)

서거 49일만에 우리는 고인의 유골을 부엉이 바위 아래 안장했습니다.
묻었습니다.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비석을 세웠습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비보를 처음 듣고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사실이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눈을 감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내다보는 하늘은 참으로 푸르고 푸르렀습니다. 흐르는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제가 고인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검찰 출두 이틀 전인 4월 28일입니다.
인사드리러 봉하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두어 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가지 말씀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 총리, 앞으로는 우리 집에 오시지 마세요. 다쳐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당하고 있어요. 오시지 마세요.....세상에 아무도 안 믿겠지만 정말 몰랐어요."

저 는 고인을 모시고 지난 25년 동안 민주화 운동과 현실 정치를 함께 했습니다. 25년 동안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거짓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천성이 그런 분이셨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에 갇혀있는 분이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이야기들, 갖은 수모를 6개월 동안이나 당하셨습니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중국 고사성어에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증삼이라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도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였다고 말하기 시작하다가 죽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증삼의 어머니 마저도 그렇게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온갖 신문, 방송에서 필객, 논객,  정치인들이 하이에나처럼 달겨들어 증삼살인에 가담했습니다. 갖가지 교언(巧言)을 동원하여 난자하였습니다.

홍위병들의 인민재판 보다 훨씬 치졸하지만 가혹했습니다. 고인은 옥죄어오는 그물을 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택했습니다.
몸을 던져 사랑하는 세상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하셨습니다. 증삼살인에 살신성인으로 맞섰습니다.
그렇게 진실을 지키고자 하셨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고인의 서거를 조광조의 기묘사화, 실학파에 대한 신유박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을 던져 일깨워 주었습니다. 500만 조문행렬이 고인을 부활시켰습니다. 두 시간, 세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조문행렬의 마음속에 노무현이 부활하였습니다.

부활! 그리스어로 부활은 '봉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죽었던 것이 되살아 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날 봉기해서 사태를 역전시켜 역사를 주도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기득권 질서와 정면으로 맞서 역전시킨다는 '부활'. 그래 그것입니다.
인간 노무현은 우리들 마음에 큰 비석을 세우게 했습니다.
증삼살인에 가담한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지만 잊지 않도록 했습니다.

정 치인 노무현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망국적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몸을 던졌습니다. 전국에서 찾아 오시는 조문행렬이 그 뜻을 가슴속에 담았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에 기초한 민주적 위민국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권과 권위주의를 버리고 분권과 균형발전을 이루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속에 그 가치가 녹아들었습니다.
노무현은 부활하고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고인이 추구했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 날았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역사라고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가치를 찾고 현실에서 방법을 찾습니다. 고인에게서 가치를 배우고 이 땅에 살아있는 우리가 방법을 찾을 때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언제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입니다. 삶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1년 반만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민주, 민생, 평화 모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 말기에 보였던 포악과 패륜 그리고 거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폭력과 공포와 만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연 봉 2천만원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돈을 '4대강 살리기'에 쏟아 붓느라 서민들의 의료급여, 장애인의 수당마저 줄이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이면서 강을 살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50년 만에 뚫은 남북관계도 다시금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현 정부가 국민의 믿음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의 말은 사람(人)의 말(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신(不信)입니다. 말은 발음과 의미가 갖아야 하는데 입과 마음이 다르니 불신입니다.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좌절하면 앞으로 3년 반동안 더 많은 것을 잃습니다.

현 정부의 역주행 때문에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와 시간을 잃습니다. 우리가 지치고 포기하면 우리 다음 세대의 꿈과 자유와 생명을 잃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우리의 자존심과 양심마저 잃게 됩니다. 우리가 또 속고 현혹당하면 눈과 귀를 잃고 마음마저 잃게 됩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국민의 마음 속에 길이 있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민심이 바뀌고 있습니다. 더 할 수 없이 소중한 가치인 자유와 인격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지역주의에 무의식적으로 물들어 있던 민심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거짓 공약에 속았다는 자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려 하지만 국민들은 소리치고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지를 직감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잘못 선택한 정권이 민주, 민생, 평화를 어떻게 유린하는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불량정권의 유통기한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현 정권을 1년 반 겪으면서 서로 손잡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며 연대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선거 때마다 투표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정치가 왜 중요하고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다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증삼살인-살신성인-부활-연대-승리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바람이 분다'. 이것이 추모제의 깃발입니다.


2009년 7월 10일
이 해 찬

출처 : 사람사는 세상

+ Recent posts